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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크라스키노 발해성 - 발굴 40년의 성과 -

크라스키노발해성

맺음말

크라스키노성은 유적의 중요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가 1980년에 이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시작한 이후 중간중간 단절된 시기가 있기는 하였으나 2018년까지 모두 28번의 여름 발굴기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국내 학계에서도 일찍부터 이 유적에 주목하여 1993~1994년에는 대륙연구소, 1998년에는 한국미술사연구소, 2001년과 2002년에는 고구려연구회, 2004~2006년에는 고구려연구재단, 2007~2015년, 2017~2018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각각 이 유적에서 러시아와 공동발굴조사를 수행하였다. 1998년부터는 일본의 청산학원대학(靑山學院大學)에서 이 성의 동벽과 동문지 일대에서 간헐적으로 발굴조사를 수행하였고, 2011년에는 중국 길림대학이 성 내 일부 지역에 대해 탐침조사를 하였다.
이 책은 1980년부터 2018년까지의 크라스키노성 발굴조사 내용을 담고 있다. 크라스키노성은 오랜 발굴조사 덕분에 오늘날 대표적인 발해유적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유적은 또한 발해 동경용원부 염주의 치소이면서 발해 일본도의 육로구간 종점이자 해로구간 출발점이었던 곳으로 이해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간된 크라스키노성 발굴조사보고서들은 모두 각 해당연도 해당 발굴구역 단위의 조사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발굴구역은 한 차례의 발굴조사 기간에 발굴이 완료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하나의 유구를 여러 시기의 발굴기간에 걸쳐 조사한 것들도 상당히 많다. 그로 인해 특정 유구들의 조사내용이 서로 다른 연도의 발굴조사보고서에 흩어진 상태로 보고된 것들도 적지 않다. 더욱이 각 해당연도의 발굴조사내용은 러시아어로는 모두 보고되었으나, 한국어로는 한국팀과 공동발굴조사를 한 것을 위주로 보고되었을 뿐이다. 러시아팀이 단독으로 발굴을 한 내용은 단편적인 내용만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따라서 크라스키노성에서 발굴된 개별 중요 유구나 유물에 대해서는 파악 가능하였으나 발굴조사성과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 학계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크라스키노성에서 실시한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성과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종합적인 학술서를 발간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에 부응하여 크라스키노성에서 실시한 그동안의 발굴조사성과를 모두 담는 학술서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유적의 입지와 발굴 경과를 소개하였고, 그동안 발굴조사가 된 유구들과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 소개 및 서술하였고, 크라스키노성의 구획과 배치문제, 층위와 각 생활면의 상대 및 절대 편년 문제, 유적의 역사적 의미 등에 대해 논하였다.
유구와 관련해서는 해당 발굴연도와 발굴구역 단위가 아니라 크게 서북지역, 중북지역, 중남지역, 동문지 일대로 구분하여 소개하였다. 서북지역은 다시 유구의 성격과 위치를 통해 북부 사찰구역, 남부 주거구역, 서남부 도로구역, 동부 일대, 동북부 일대로, 중북지역은 도로-주거구역과 북부 일대로 각각 세분하였고, 그 외 중남부 광장지역, 서벽과 동벽의 성벽 조사내용, 동문지와 부근의 치 조사내용 등도 함께 검토하였다.
유구 자체에 대해서는 서북지역 사찰구역의 경우에는 층위나 생활면 구분이 위생활면과 중간생활면 금당지 및 관련 시설을 제외하고는 분명하지 않아 유구 단위로 검토를 하였다.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과 동부 일대 그리고 서남부 도로구역에는 시간상 서로 차이가 분명한 문화층들이 구분되었기 때문에 먼저 생활면을 구분하고 그다음에 각 생활면 단위로 유구들을 소개하였다. 중북지역 도로-주거구역도 마찬가지로 생활면들을 먼저 구분하였고 그다음에 각 생활면에 속하는 유구들을 차례로 소개하였다.
중요 유구들을 열거한다면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의 경우에는 석축담장, 위생활면 금당지, 중간생활면 금당지, 중간생활면 석축담장 기초, 전각지, 와실유구, 초석 건물터, 우물, 다수의 가마터 등을 들 수 있다.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에서는 제1생활면에서 1호 주거지, 2호 주거지, 1호 건물지, 2호 건물지, 제2생활면에서 9호 주거지, 20-21호 주거지, 22호 주거지, 23호 주거지, 제3생활면에서 4호 주거지, 10호 주거지, 11호 주거지, 14호 주거지, 15호 주거지, 제4생활면에서 5호 주거지, 13호 주거지, 24호 주거지, 제5생활면에서 6호 주거지, 12호 주거지, 28호 주거지, 폐기물 구덩이 등이 조사되었다.
중북지역 도로-주거구역에서는 동서방향과 남북방향의 ‘十’자 모양으로 서로 교차하는 도로가 동서방향 62.5m, 남북방향 16.3m 길이 각각 노출되었으며, 이 도로의 서북쪽 부분에서 18호 주거지, 19호 주거지, 1호, 2호, 3호 저장구덩이가, 도로의 서남쪽 부분에서는 25호 주거지, 26호 주거지, 27호 주거지 등이, 동북쪽 부분에서는 22호 주거지 등이 각각 조사되었다. 서북지역 서남부 도로구역과 중북지역 도로-주거구역의 도로에서 각각 5개씩의 생활면이 구분된 사실과 성벽의 축조방법과 문지의 구조를 파악하고, 치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중요하다. 특히 중북지역 도로-주거구역의 ‘十’자 모양으로 서로 교차하는 도로는 크라스키노성이 계획도시였고, 또 성 내가 일정 규모의 ‘방’ 단위로 구획되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유적 발굴조사 내용은 그것이 어떤 유적이든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크라스키노성 발굴조사성과가 고고학적으로 특히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유적의 문화층들이 5개 혹은 6개의 생활면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에 있다. 예를 들어, 서북지역 서남부 도로구역(제51구역)에서는 5개의 도로 생활면이 구분되어 도로 각 생활면과 사찰구역 담장 그리고 성벽의 축조 시기 등에 대한 상관관계가 파악되었다. 이곳에는 가장 이른 단계에 도로 제5생활면이 존재하였고, 그다음에 도로 제4생활면에서 성벽을 축조하였으며, 그다음 일정 기간의 시차를 두고 도로 제4생활면과 제3생활면 사이에 사찰구역 석축담장을 축조한 것이 확인되었다.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에서는 제34구역과 제40구역 그리고 제48구역에서는 5개씩의 생활면이, 제44구역 서쪽 섹터에서는 6개의 생활면이 각각 구분되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제44구역 서쪽 섹터의 생활면들인데 이곳에서는 가장 아래 제6생활면 위로 발해 시기에 성토 대지를 조성한 것과 그리고 그 위로 발해 시기에 형성된 5개의 생활면이 다시 구분되었다. 각 생활면에서 조사된 주거지 등의 유구들은 일정한 배치 구도와 특징을 보여 이 유적에서 주거지 등 유구의 변천 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더욱이 제44구역 서쪽 섹터 서벽에는 생활면이 분명한 상태에서 채취한 다수의 목탄 시료에서 얻어진 방사성탄소연대가 있다. 이곳의 방사성탄소연대와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 내의 다른 지점들에서 확보한 방사성탄소연대들은 이곳 각 생활면의 절대연대를 판단할 수 있게 하였다.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을 중심으로 살펴본 크라스키노 성의 절대연대는 제6생활면은 고구려시기, 제6생활면과 제5생활면 사이 기간은 700년 전후~715년 전후(발해 건국 직후 시기), 제5생활면, 제4생활면, 제3생활면은 715년 전후~780년 전후(발해 전기), 제2생활면은 780년 전후~880년 전후(발해 중기), 제1생활면은 880년 전후~발해 멸망까지(발해 후기)로 각각 판단되었다.
따라서 이곳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 각 생활면에서 조사된 주거지나 건물지 등의 유구들은 상대적인 편년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편년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다만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의 각 생활면에 대한 절대연대를 다른 곳의 생활면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추가적인 검토를 통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곳의 제5생활면 중에는 제44구역 서쪽 섹터에서 확인된 제6생활면과 시간적으로 서로 상응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된다.
유물은 불교 관련 유물, 지붕 관련 유물, 토제, 석제, 철제, 청동(금동)제, 청동-철제 유물, 납, 유리, 뼈로 만든 유물, 토기, 자기와 시유기, 식물유체, 동물유체로 구분하여 검토하였고 그 내용을 소개 및 서술하였다.
유물의 종류는 지극히 다양하다. 불교 관련 유물로는 금동불상, 석불 상체, 불두, 석불 몸체, 석제 판불편, 금동불수, 금동광배, 금동불상대좌 등이 있으며, 그 외 금당에서 발견된 철제 완, 토제 완, 토제 삼족기, 삼채기, 금당의 지붕에 사용되었던 철제 풍탁 등도 불교와 관련된 유물일 것이다.
지붕 관련 유물로는 각종 평기와, 마루기와, 와당, 마루 장식기와 등이 있는데 마루 장식기와 중에서 치미 외에 용마루의 가운데에 얹은 ‘연꽃봉우리장식’으로 보고된 보탑이 특히 주목된다.
토제유물에는 벼루, 촛대, 도가니, 다공체유물, 벽돌, 어망추, 방추차, 고리, 토우, 놀이 알, 구슬, 목걸이 알 등등이 있다. 다공체유물은 입방체가 일반적이나 크라스키노성에서는 집모양 다공체와 불탑모양 다공체유물도 출토되어 주목된다. 벼루는 발해인들이 붓글씨를 썼음을, 촛대는 초를 피워 집안을 밝혔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증거이다. 토우 중에는 말의 형상과 원숭이 모자상이 있다.
석제유물은 오리모양 장식, 고누판, 다듬잇돌, 숫돌, 용기, 돌확, 방추차, 어망추, 사용흔이 있는 자갈돌 등의 각종 생활용품과 홍옥 목걸이 알, 수정 구슬, 백색 돌 구슬, 환옥, 옥장식, 띠꾸미개 등의 장식품이 있다. 고누판과 다듬잇돌은 발해유적에서는 처음 발견된 유물로서 발해인들이 고누를 두었고 또 의복을 다듬이질하여 입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이다. 공기놀이에 사용된 공깃돌도 다량 출토되었다.
철제유물은 주조하여 만든 주철제와 단조하여 만든 철제로 구분이 되어 보고되었다. 주철제 유물에는 수레바퀴 차관과 비녀못, 솥, 보습 등이 있다. 주조와 단조한 것으로 모두 포함하는 철제유물은 농공구류, 어구류, 무기류, 일상생활용품, 건축소모품과 부속품, 수레바퀴 부속품, 교구(띠 부속품), 지붕 부속품, 용도미상 철제유물, 기타 철제유물 등으로 구분된다. 농공구류는 삽, 낫, 도끼, 자귀, 정, 톱, 보습, 집게, 칼, 어구류는 낚싯바늘과 작살, 무기류는 창, 창고달이, 화살촉, 찰갑, 일상생활용품은 솥과 용기, 다리미, 부싯쇠, 갈고리, 바늘, 아궁이 뚜껑, 건축소모품과 부속품은 못, 자릿쇠, 꺾쇠, 배목, 자물쇠와 열쇠, 문고리 빗장, 추정 빗장 부속품, 쇠고리, 추정 경첩, 수레바퀴 부속품은 차관과 비녀못, 교구는 버클, 과대장식, 사미, 용도미상 철제유물은 고깔모양 철제품, 쌍각 미늘, 용수철모양 철제품, 클립, 회전고리, 원통모양 철제품, 관상 철제품, 추정 타악기 공, 기타 철제유물은 겹 판상 철제유물, 감은 철제유물, 못을 박은 철제유물, 판상 철제유물, 축모양 철제유물, 덩이모양 철제유물 등이 각각 출토되었다. 그 외에 근현대의 철제 숟가락과 편자도 발견된 것이 있다. 일상생활용품 중 다리미는 당시 사람들도 의복을 다리미로 다려서 멋을 내었음을 말한다.
청동(금동) 유물은 쌍봉낙타상, 장신구, 대금구(띠 부속품), 장식품, 용품, 용기, 동전, 용도불명 유물, 슬래그 등이 출토되었다. 장신구로는 비녀, 팔찌, 반지가, 교구는 버클, 과대장식, 사미가, 장식품은 심엽형 장식, 十자모양 장식, 드리개, 꺾쇠모양 장식, 포형장식, 방울이, 청동 용품은 거울, 핀셋, 회전고리, 메기, 고리, 클립, 배목, 연결고리, 미니어처 갈고리, 미니어처 끌이, 용기는 완이, 동전은 개원통보가, 용도불명 유물은 막대기모양 유물, 용수철모양 유물, 판모양 유물 등이 각각 확인된다. 그 외에 청나라의 도광통보와 건륭통보, 근현대의 청동단추와 담뱃대도 출토된 것이 있다.
청동-철제 유물은 청동과 철이 함께 사용된 유물인데 대금구의 하나인 버클에서 확인된다. 유리 제품은 금박유리구슬과 유리구슬이 있다. 골제 유물은 명적 예비품과 판상 유물이 발견된 것이 있다. 목제 유물은 목기 완과 빗, 그리고 규화목 쪼가리가 있다.
토기는 보고서에 도면이 제시된 것을 중심으로 분류를 하였다. 토기를 분류하는 데에는 기종 구분의 기준이 필요하여 먼저 각 기종의 특성을 분석하여 각각의 토기들이 어느 기종에 속하는지를 파악하였고, 그다음에 각 토기를 옹류 토기, 외반구연 호류 토기, 심발류 토기, 동이류 토기, 외반구연 (천)발, 외반구연 완, 직구류 토기, 내만구연 토기, 병류 토기, 반류 토기, 직구·직벽·약호선 기벽 사발, 대접, 완류 토기, 뚜껑류 토기, 접시, 시루, 드문 기형 토기, 명문 토기, 그리고 말갈계의 협타형(심발형) 토기로 각각 구분하였다. 각 기종의 토기는 다시 구연부의 특징에 따라 형식을 설정하여 형식 단위로 소개하였다.
자기와 시유기는 삼채기, 백자, 기타 자기, 근현대 자기로 구분하여 소개하였다.
크라스키노성에서 발견된 식물유체는 재배 곡물식물, 야채식물, 야생 식용식물, 잡풀과 비식용 야생식물의 씨앗들로 각각 구분되었는데 당시 발해 사람들의 식생활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동물유체는 포유류 동물, 조류 동물, 어류, 바다 연체동물로 구분하여 소개하였다. 바다 포유류 동물 중에는 고래의 뼈도 있어 주목된다. 동물의 뼈 중에는 쌍봉낙타의 지골도 출토된 것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쌍봉낙타의 뼈와 청동 쌍봉낙타상은 이곳 발해의 동쪽 끝에 위치하는 크라스키노성에까지 서역 혹은 중부아시아의 대상들이 직접 왕래하였음을 보여주는 물질적인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1980년부터 2018년까지 크라스키노성에서 발굴조사가 된 모든 생활면과 각 생활면 속의 유구들 그리고 출토유물들을 모두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소개하였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유물 각 형식 간의 상대적인 편년과 절대적인 편년 작업의 성과는 반영되지 못하였다. 서북지역 서부 도로구역과 사찰구역에서는 8개 형식의 와당이 일정한 형식 단위로 출현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서북지역 남부 주거구역에서는 청동 대금구와 토기의 상대적 편년이 어느 정도 설정이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이 유물들 각 형식 간의 상대 편년 작업은 완료되지 못하였다. 특히 토기는 기종과 기형 및 구연부 형식이 다양하고 출토양상이 복잡하여 분석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향후 유물 각 형식 간의 상대 및 절대 편년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하여 보완하여 갈 것이다.
오늘날 크라스키노성이 발해의 표지유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발해유적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발굴되었고, 도성을 제외하고는 가장 넓은 면적이 발굴되었으며, 지극히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었고, 더하여 유구와 유물의 상대 편년과 절대 편년이 가능한 자료들이 확보되었다.
유적 발굴 못지않게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보존과 관리일 것이다. 이제는 크라스키노 발해 염주성의 향후 보존과 관리에 대한 국제적 논의도 함께 추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 책이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할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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