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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II

최근 몇 년 동안 육군부는 폐하의 재가를 얻은 대일본 행동의 일반적 논거에 따라, 극동에서 전쟁 준비를 해왔습니다. 이때 상서(尙書) 베조브라조프주 006
번역주 006)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베로브라조프(Александр Михайлович Безобразов[1855 — 1931]). 러시아의 군인-정치가로 극동문제에 주로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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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중심으로 몇몇 인물들은 이와 관련된 간략 보고서들을 작성했습니다. 간략 보고서는 극동에서 매우 긴박하게, 그리고 아주 대대적인 규모로 우리 군을 강화시켜야만 한다고 확증하고 있습니다. 또 평화기와 전시에 한국과 만주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행동방식을 확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압록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남만주 지역에서 우리 군대를 강화시켜야만 일본과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 인물들의 노고에 대한 황제 폐하의 높은 관심과, 총참모부 및 주요 기관에서 우리의 극비문서를 입수할 수 있도록 상서 베조브라조프에게 윤허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육군부의 대표로서 뿐만 아니라 신하로서 제가 관찰할 수 있는, 그리고 제가 보기에 해명과 반박이 대단히 필요한 그 간략보고서들에 대해 완전히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 평가’라는 제하의 4등관 베조브라조프(1901년 6월 6일)의 첫 간략 보고서는 그 해 2월 황제 폐하를 통해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간략 보고서에는 일본과 전쟁을 치를 경우 지켜야할 행동 수칙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얼빈을 우리 주력부대의 집결 지역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길림(吉林)으로 우리군의 전위부대를 집결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 북부 지역의 전선을 적극적인 방어하고, 일본해와 한국만에서 일본이 군사행동을 전개할 때 적군의 양익(兩翼)에 위협을 가하기 위해 산악용 무기로 무장한 충분한 숫자의 기마 소총병을 보유해야만 합니다.” 
극동에서 증가해야 할 병력 수는 총 3만 5천 명이며 그들 중 산악 포병을 포함한 기마 소총병 5천 명은 한국 북부에 배치해야 한다고 확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간략 보고서에는 우리 병력을 3만 5천 명으로 증가시키면서도 병력의 일부를 남만주에 배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제시되어 있습니다.
적군이 작전 계획에 따라 한국을 출발한 뒤 우리가 ‘전략적’ 전위 부대를 출동시키게 될 길림을 경유할 것이라는 계산은 완전한 오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경에서 길림까지는 마소에 짐을 싣고 가야 하는, 매우 통과하기 어려운 길입니다.
그런데 이 간략 보고서에서 주의를 끄는 것은 한국 북부에 산악용 무기로 무장한 대규모 기마 소총병 5천 명을 배치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이 부대의 ‘빨치산’ 활동이 가져다 줄 큰 이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빨치산 활동이 성공하려면 활동 전개 지역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또 주민들은 빨치산에 대해 호의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빨치산 대원들이 군사행동 도중 우연히 낯선 지역에 들어가서 물자를 확보하기에는 그 물자가 너무 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빨치산 부대가 우리 군대와 연락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모든 감시 내용을 정확하게 보고할 때만 빨치산 작전은 유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빨치산 부대가 다른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적절한 휴식을 취할 때만 빨치산 작전은 유용할 것입니다.
1812년 우리의 빨치산은 이렇게 행동했습니다. 만일 적이 우리의 국경을 침범한다면 우리의 빨치산은 이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 군의 전위부대와 4백-9백 베르스타주 007
번역주 007)
미터법 시행 전 러시아의 거리 단위. 1베르스타(верста)=1.067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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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곳,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이유가 없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낯선 곳, 5천 명의 사람과 5천 필의 말에게 양식을 제공할 물자가 없는 곳, 크지 않은 갈래 길을 따라서만 이동할 수 있는 곳, 마지막으로 한국 국경의 넓은 지역에서 도보로 건널 수 없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의해 만주와 분리된 곳, 이런 지역들에서 빨치산 부대의 활동은 장애가 많을 뿐 아니라 별로 유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선전포고와 함께 하얼빈과 길림 근처로 집결하면서 5천 명의 기마 부대를 수백 베르스타 떨어진 곳으로 전진시킨다면 우리는 이 병력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또 부대는 급식 문제에서 처음부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적이 없어도 사료 부족으로 말들이 폐사하기 시작할 것이고 도보로 걷게 된 사람들은 적들의 희생물이 될 것입니다. 이 부대와 전투에서 일본인들은 대승을 거둘 것입니다. 기마소총병은 보병으로서만 행동할 수 있을 뿐이어서 말을 타고서 일본 기마병과 싸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그들은 겁이 없습니다). 또 지역 정세를 모르고 주민들에게 낯선 우리의 기마 소총병들은 영웅적인 투쟁 후에 전멸하든가, 일본인들의 사기를 고양시킨 후 엄청난 손실을 안고 만주로 퇴각할 것입니다.
즉 선전포고와 함께 이 기마 부대를 한국 쪽으로 전진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상서 베조브라조프는 전쟁 전에 미리 한국 북부에서 향후 빨치산 활동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 압록강 채벌 이권을 이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동료 중 육군 중령 코르프 남작은, 총참모부에 제출한 간략 보고서 ‘1898년 한국 북부 가을 원정대의 중요한 결론’에서 압록강 채벌 이권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보장해 준다고 적고 있습니다.
“1) 이 나라 천연자원의 합리적인 개발로 대규모 수입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완전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이 나라에 자리를 굳힐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북부와 남부가 상업, 행정적으로 독립해 있다는 점과 주민이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이곳에 도로의 부설, 집하창고와 보루의 건설 등을 통해 대규모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전장(戰場)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빨치산 부대가 활동하게 될 장소에 빨치산 부대원을 배치시킨 뒤, 그들의 군사 행동을 위한 전장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북부 지역에서 대규모 작전을 위한 전장 준비나 빨치산 부대의 활동 지역과 부대원의 군사 행동을 위한 전장 준비는 한국뿐 아니라 특히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불안을 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올 해 초, 한국 북부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하자 일본은 대단히 불안해했고 여론은 매우 흥분했습니다. 압록강 연안에서 우리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비롯된 우리와 일본의 전쟁 위험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일본과 단교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평화기에 한국 북부에 산포병(山砲兵)과 기마 소총병 5천 명을 배치하더라도, 우리 군대가 북만주에만 집중된 상황에서는 이 병력이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미 구축한 예비물자 집하창고를 보유하고 있어도 일본군과 전투를 치룰 수 없거나 그들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안겨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5천 명의 병력이 만주에 대한 일본의 공세를 중지시킬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15만 명의 일본군 앞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거미줄일 뿐입니다.
한국 국경에 있는 이 5천 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만주 수호와 철도 보호에서 우리에게 확실한 유용성을 가져다주려면, 만주의 러시아 군대와 그들의 연결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즉 남만주 지역으로 우리 군대의 집결 지점을 이동시킬 뿐만 아니라 만주를 확실하게 고수하겠다는 과제를 세워야만 합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평화기에 이 나라에서 우리 군대를 철수시킬 것이 아니라 압록강까지 철도를 부설하고 압록강으로 연결된 비포장도로를 보수, 개선하며 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선장을 설치하고, 평화기에 우리 군대가 남만주 지역과 봉황성주 008
번역주 008)
봉황성(鳳凰城). 현 요녕성(遼寧城)에 있었던 고대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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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거점으로 압록 우안(右岸)을 확실하게 점령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제의 실행은 1902년 3월 26일 청국과 우리의 협약을 위반하게 될 것인데, 중요한 것은 일본과의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결과는 아마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지난 해 말과 올 해 초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활동은 3월 26일 협약을 위반했으며 일본과의 불화를 초래했습니다.
극동의 우리 외교관과 재정관이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행동과 그가 피력한 계획에 관해 쓴, 폐하께서 이미 알고 계시는 보고서의 내용은 제가 여순항에 체류할 때 시종무관장 알렉세예프가 제게 권위를 가지고 언급한 내용에 의해 완전히 확인되었습니다.
실제로 상서 베조브라조프는 알렉세예프 제독에게 시종무관장 알렉세예프 소속 군인들 중 변복한 6백 명의 병사를 한국으로 파견할 것, 그리고 동일한 목적을 위해 3천 명의 홍호자족주 009
번역주 009)
홍후즈족. 하북․만주의 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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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를 조직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사하진주 010
번역주 010)
사하진(沙河鎭). 현 청국 요녕성(遼寧城) 단동시에 위치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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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압록강에 6백 명의 기마 소총병으로 구성된 4개 사냥 부대를 파견하여 임업회사 대표부의 활동을 강화시킬 것도 요청했습니다. 또 독립 군부대로 봉황성을 점령할 것도 요청했습니다. 시종무관장 알렉세예프는 사하진에 1백 5십 명의 기마 소총병으로 구성된 1개 사냥부대의 파견에 동의했으며 봉황성에는 무장 기마부대를 배치시켰습니다.
이로써 묵덴 지역에서 철군은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임업회사의 다른 활동가들 중 상서 베조브라조프처럼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5등관 발라세프는 시종무관장 알렉세예프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심려를 끼쳤습니다.
발라세프는 자신이 일본인들을 다시 체포했고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벌을 가했으며 일제 사격을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지급공보를 2등 대위 보디스코(Бодиско)에게 보내려했습니다. 만일 이것을 시종무관장 알렉세예프가 중지시키지 못했다면 유혈이 낭자한 사건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압록강 연안에서는 지금도 이런 일이 매일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압록강 연안 임업회사의 인적 구성(향후 빨치산 활동의 핵심요원)은 1백 명의 예비 하사와 몇 명의 장교들입니다.
그 회사의 지역 책임자인 참모본부 소속 육군중령 마드리토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 요원들의 활동이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활동으로 매우 불안해하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을 군사·정치적 성격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도 이 활동에 동일한 성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 체류하면서 그들이 한국에서 우리의 활동에 대해 얼마나 불안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우리의 계획을 얼마나 과장하고 있는지, 손에 무기를 들고 한국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청국군을 축출시키면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해 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동반도와 여순항을 탈취했지만 러시아의 뜻에 의해 자신들의 승전의 결실을 얻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 요동, 여순항에서 철군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씁쓸한 모욕감을 품고서 여순항이 러시아 소유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1897-1898년 우리가 러시아의 교관인 부대장 푸탸타을 통해 한국군을 조직하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청국과 협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은 우리가 만주 전체를 러시아에 합병시키려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압록강에서 서울까지 철도 부설권을 요구하면서 마산포에서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의 적극적인 활동은 일본인들에게 러시아가 극동 계획안의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는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즉 만주 다음에는 한국을 집어삼킨다는 것입니다.
현재 일본의 분위기는 매우 격분되어 있습니다. 저는 시종무장관 알렉세예프가 현명하게 행동하면서 조심을 하지 않고 상서(尙書) 베조브라조프의 모든 계획을 실행했다면, 우리는 지금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 다른 위정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감 있는 걱정에 황제 폐하는 신뢰를 표시하시고 극동에서의 안정 유지와 우리 이익 보호의 의무를 지우셨습니다.

  • 번역주 006)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베로브라조프(Александр Михайлович Безобразов[1855 — 1931]). 러시아의 군인-정치가로 극동문제에 주로 전념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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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터법 시행 전 러시아의 거리 단위. 1베르스타(верста)=1.067킬로미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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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황성(鳳凰城). 현 요녕성(遼寧城)에 있었던 고대 지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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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후즈족. 하북․만주의 마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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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진(沙河鎭). 현 청국 요녕성(遼寧城) 단동시에 위치한 지역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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