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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동래 사람 안용복 등이 일본국에서 왜인과 송사하고 돌아오니 잡아 가두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696년 8월 29일(음)
  • 출전
사료해설
1696년 3월 안용복 등 11명은 돗토리의 태수에게 우산도(독도)가 조선땅이므로 일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건너오는 것을 금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도해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임을 확인하는 소송을 위한 자발적이 것이었다. 안용복의 도일은 돗토리번[鳥取藩]의 에도번저[江戶藩邸]에 알려졌고, 대마도의 에도번저에도 알려졌다. 결국 대마도측의 농간으로 막부는 안용복 등의 항의는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은 나가사키를 통하지 않고 돗토리번령에서 곧바로 추방할 것을 결정하였다. 조선후기 표류민송환절차를 거치지 않고 양양현으로 귀국한 안용복 일행은 곧바로 강원 감사(江原監司) 심평(沈枰)에게 체포되었다.
원문
○東萊人安龍福、興海人劉日夫、寧海人劉奉石、平山浦人李仁成、樂安人金成吉、順天僧雷憲ㆍ勝淡ㆍ連習ㆍ靈律ㆍ丹責ㆍ延安人金順立等, 乘船往鬱陵島, 轉入日本國伯耆州, 與倭人相訟後, 還到襄陽縣界, 江原監司沈枰, 捉囚其人等馳啓, 下備邊司。
번역문
동래(東萊) 사람 안용복(安龍福)·흥해(興海) 사람 유일부(劉日夫)·영해(寧海) 사람 유봉석(劉奉石)·평산포(平山浦) 사람 이인성(李仁成)·낙안(樂安) 사람 김성길(金成吉)과 순천(順天) 중[僧] 뇌헌(雷憲)·승담(勝淡)·연습(連習)·영률(靈律)·단책(丹責)과 연안(延安) 사람 김순립(金順立) 등과 함께 배를 타고 울릉도(鬱陵島)에 가서 일본국(日本國) 백기주(伯耆州)로 들어가 왜인(倭人)과 서로 송사한 뒤에 양양현(襄陽縣) 지경으로 돌아왔으므로, 강원 감사(江原監司) 심평(沈枰)이 그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치계(馳啓)하였는데, 비변사(備邊司)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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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사람 안용복 등이 일본국에서 왜인과 송사하고 돌아오니 잡아 가두다 자료번호 : sd.d_0149_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