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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강원도 관찰사가 울릉도 유산국의 섬 사람에 대해 보고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412년 4월 15일(음)
  • 출전
사료해설
무릉도(武陵島; 울릉도)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정부의 '쇄환정책'으로 유산국도(流山國島)로 이주해 살고 있던 울릉도민 12명이 고성(高城) 어라진(於羅津)에 와서 울릉도의 지리·자연환경·인문환경에 대해 이야기 한 바를 경상감사가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울릉도에는 11호 60여명의 백성들이 거주하였으며, 섬의 크기가 동에서 서까지, 남에서 북까지 모두 2식(息) 거리이고, 둘레가 8식(息) 거리이며, 우마(牛馬)와 논은 없으나 콩과 보리의 수확량이 많았으며, 대나무가 크고, 해산물과 과실이 풍부하였다.
원문
○命議政府議處流山國島人。 江原道觀察使報云: “流山國島人白加勿等十二名, 求泊高城於羅津, 言曰: ‘予等生長武陵, 其島內人戶十一, 男女共六十餘, 今移居本島。 是島自東至西自南至北, 皆二息, 周回八息。 無牛馬水田, 唯種豆一斗出二十石或三十石, 麥一石出五十餘石; 竹如大椽; 海錯果木皆在焉。’ 竊慮此人等逃還, 姑分置于通州、高城、杆城。”
번역문
의정부(議政府)에 명하여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을 처치하는 방법을 의논하였다. 강원도 관찰사가 보고하였다.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 백가물(白加勿) 등 12명이 고성(高城) 어라진(於羅津)에 와서 정박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무릉도(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의 인호(人戶)가 11호이고, 남녀가 모두 60여 명인데, 지금은 본도(本島)로 옮겨 와 살고 있습니다. 이 섬이 동에서 서까지 남에서 북까지가 모두 2식(息) 거리이고, 둘레가 8식(息) 거리입니다. 우마(牛馬)와 논이 없으나, 오직 콩 한 말만 심으면 20석 혹은 30석이 나고, 보리 1석을 심으면 50여 석이 납니다. 대[竹]가 큰 서까래 같고, 해착(海錯)과 과목(果木)이 모두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하여 갈까 염려하여, 아직 통주(通州)·고성(高城)·간성(杆城)에 나누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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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관찰사가 울릉도 유산국의 섬 사람에 대해 보고하다 자료번호 : sd.d_0149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