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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애니

이사부와 우해왕 이야기

6세기경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비하여 백제와 힘을 합쳐 고구려에 대항하면서 동해안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해상교통로의 중간에 있었던 우산국을 복속하는 것은 해상권 장악을 위해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우산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요?
우산국에 대한 문헌사료는 거의 없으나 울릉도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산국이 가장 왕성했을 때는 우해왕이 다스릴 때였습니다. 작은 나라지만 어느 나라 보다 바다에서는 힘이 세었다고 합니다. 당시 왜구가 우산국을 가끔 노략질하였는데, 그 본거지는 대마도였습니다. 우해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대마도로 가서 대마도의 수장을 만나 담판을 하였습니다. 우해왕은 우산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항복 서한을 받고 수장의 셋째 딸인 풍미녀를 왕후로 삼았습니다. 사치스러운 풍미녀는 온갖 보물을 담하였고 우해왕은 무엇이든 들어주려고 했습니다. 우해왕은 시라에까지 사람을 보내 노략질을 해오도록 하였습니다. "망하겠구나" "풍왕후는 마녀야" "우해왕이 달라졌어"라는 소문들이 온 우산국에 퍼졌습니다. 신라가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신하가 보고를 하였더니, 우해왕은 도리어 왕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그 신하를 바다에 처넣었습니다. 이를 본 신하들은 되도록 왕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풍미녀가 왕후가 된지 몇 해 뒤에 결국 우산국은 망하고 말았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시 신라인들의 눈에 비친 우산국 사람들은 우둔하고 사나워 보였습니다. 512년 음력 6월 동해바다에 나타난 신라함대, 신라군 총 사령관은 이사부 장군이었습니다. 이사부는 출생연대에 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내물왕의 4세손으로 진골출신 귀족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정벌하기 위해 나선 이사부 장군이 준비한 것은 나무로 만든 사자였습니다. 이사부는 나무사자를 많이 만들어 군선에 나누어 실은 뒤 해안에 도착해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맹수를 풀어 밟아 죽이도록 하겠다'라고 속여 우산국 왕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우산국은 신라에 복속하게 되었고, 신라의 문화가 전파되었습니다. 울릉도에서는 신라의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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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와 우해왕 이야기 자료번호 : isct.d_0001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