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공(太史公)의 말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위타(尉佗)가 왕이 된 것은 본래 임오(任囂) 때문이었다. 한나라가 천하를 평정하게 되자 제후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융려후(隆慮侯)가 습기와 전염병에 걸리자 위타는 이때부터 더욱 교만해지기 시작하였다. 구락(甌駱)이 남월을 공략하자 남월은 크게 동요하였다. 한나라 군대가 국경에 다다르자 영제(嬰齊)가 입조하였다. 그 후 나라가 망하였는데, 그 조짐은 규씨(樛氏) 여자에서 비롯되었다. 여가(呂嘉)의 작은 충성 때문에 조타의 후사가 끊기게 되었다. 누선장군(樓船將軍)은 자기 욕심만 부리며 태만하고 오만하여 적을 부수고 살피는 데 게을러 잘못을 저질렀으나 복파장군(伏波將軍)은 곤궁에 빠졌을 때 그 기지와 사려깊음이 더욱더 빛을 발해 화를 복으로 바꾸었다. 성패의 뒤바뀜은 이처럼 새끼를 꼬는 것과 같구나.
색인어
- 이름
- 태사공(太史公), 위타(尉佗), 임오(任囂), 융려후(隆慮侯), 위타, 영제(嬰齊), 여가(呂嘉), 조타
- 지명
- 한나라, 남월, 남월, 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