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월이 평정된 뒤 구군(九郡)을 설치함
창오왕(蒼梧王) 조광(趙光)은 월왕(越王)과 동성(同姓)이다. 한나라 군대가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월(越)의 게양령(揭陽令)주 001
각주 001)
인 정(定)
주 002과 함께 한나라에 복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월의 계림감(桂林監)주 003인 거옹(居翁)
주 004은 구락(甌駱)에게 한나라에 복속하도록 종용하여주 005모두 후(侯)가 될 수 있었다.주 006이리하여 과선장군과 하려장군의 군대 및 치의후가 징발한 야랑국의 군사가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남월은 평정되었다. 마침내 이곳에 구군(九郡)주 007을 설치하였다. 복파장군은 봉을 더하였고 누선장군은 견고한 적의 군대를 함몰시킨 공로로 장량후(將梁侯)
주 008에 봉해졌다.揭陽令 : 『集解』의 韋昭에 의하면, 揭의 음은 기(其)와 서(逝)의 반절, 즉 ‘게’이다. 『索隱』은 또한 「地理志」를 인용하여 揭陽縣이 南海郡 소속이며, 揭의 음은 걸(桀)이라 하였다(集解韋昭曰 : 「揭音其逝反.」 索隱地理志揭陽縣屬南海. 揭音桀. 韋昭音其逝反, 劉氏音求例反. 定者, 令之名也. 案 : 漢功臣表云 「定揭陽令」, 意又別也). 또, 『漢書』 顔師古注에 인용된 蘇林에 의하면, “揭의 음은 羯이다. 남해현이다(揭音羯. 南海縣).”라고 하였다. 이처럼 ‘揭’는 게, 갈, 걸로 음이 각각 다르다. 여기에서는 위 소설을 따랐다. 揭陽縣은 秦代 설치되었고 揭陽嶺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揭陽이라 불렀다. 治所는 현재의 廣東省 揭陽市 서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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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揭陽令 : 『集解』의 韋昭에 의하면, 揭의 음은 기(其)와 서(逝)의 반절, 즉 ‘게’이다. 『索隱』은 또한 「地理志」를 인용하여 揭陽縣이 南海郡 소속이며, 揭의 음은 걸(桀)이라 하였다(集解韋昭曰 : 「揭音其逝反.」 索隱地理志揭陽縣屬南海. 揭音桀. 韋昭音其逝反, 劉氏音求例反. 定者, 令之名也. 案 : 漢功臣表云 「定揭陽令」, 意又別也). 또, 『漢書』 顔師古注에 인용된 蘇林에 의하면, “揭의 음은 羯이다. 남해현이다(揭音羯. 南海縣).”라고 하였다. 이처럼 ‘揭’는 게, 갈, 걸로 음이 각각 다르다. 여기에서는 위 소설을 따랐다. 揭陽縣은 秦代 설치되었고 揭陽嶺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揭陽이라 불렀다. 治所는 현재의 廣東省 揭陽市 서북이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색인어
- 이름
- 조광(趙光), 정(定), 거옹(居翁), 치의후, 장량후(將梁侯)
- 지명
- 한나라, 월(越), 한나라, 월, 한나라, 야랑국, 남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