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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순우[기]는 빛깔이 빼어났으니, 첩첩산중에 색을 보태었고,

순우[기]는 빛깔이 빼어났으니, 첩첩산중에 색을 보태었고,
『주례』 직방주 001
각주 001)
「軄(職)方」은 『周禮』의 편명이자 官名(夏官) 職方氏의 준말이다. 『周禮』 夏官司馬 下, 職方氏에 따르면 職方氏는 천하의 지도와 사방의 貢賦를 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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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동북쪽을 유주라 한다. 그 산진을 의무려주 002
각주 002)
‘鑿無閭’에서 ‘鑿’은 ‘毉’의 오기로 보인다. 같은 주문의 다른 구절에서는 ‘毉’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周禮』 夏官司馬下 職方氏에서는 “東北曰幽州 其山鎭曰醫無閭”라고 하여 ‘毉無閭’를 ‘醫無閭’라 쓰고 있고, 마찬가지로 『漢書』 地理志上에서도 “東北曰幽州 其山曰醫無閭”라 하고 있으며, 주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續漢書』(『後漢書』 郡國志)에서도 “無慮 有醫無慮山”이라 하고 있다. ‘毉’와 ‘醫’는 음과 뜻이 서로 같은 이형동의자로 곧 ‘毉無閭’는 ‘醫無閭’를 말하는 것이다. 이 醫無閭는 후대에 “醫巫閭”로 표기가 정착되는데, 현재 醫巫閭山은 중국 요령성 錦州市 관할 北鎭市 부근에 위치해 있다. 한편 6세기 말~7세기 초 이 지역에 고구려 武厲城이 세워져 요서에 자리 잡은 고구려 서변의 최전선 군사 거점으로 기능하였다는 견해가 최근 제기된 바 있다(이성제 「高句麗의 西部 國境線과 武厲邏」 『대구사학』 113, 2013, 17~20쪽). 즉 武厲邏(新民市)와 武厲城을 같은 실체로 보던 그간의 이해와 달리 武厲城을 중국의 옛 無慮縣 일대에 설치된 고구려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아가 고구려는 6세기 전반 요서 일대로 진출하여 이후로 隋代(6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중국과의 경계를 의무려산~대릉하 하류 일대에 두고 있었다는 신설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이성제, 「高句麗와 北朝의 경계」 『고구려발해연구』 97, 2016, 50~53쪽). 이러한 논의를 경청할 때, 『翰苑』의 주문에서 漢代의 無慮縣과 醫巫閭山을 고구려와 연관시키고 있는 데에는 이 지역이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인식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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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한다.” 『이아』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동북쪽의 아름다운 것으로 의무려의 순우기주 003
각주 003)
醫無閭山에서 나는 玉類로서, 이와 관련하여서는 주문에 인용된 『爾雅』 구절(『爾雅』 九府 “東方之美者 有醫無閭之珣玗琪焉”【晉郭璞注 醫無閭 山名 今在遼東 珣玗琪 玉屬】) 말고도 『淮南子』 墬形訓의 “東方之美者 有醫毋閭之珣玗琪焉”, 『說文』 玉部의 “醫無閭之珣玗琪 周書所謂夷玉也” 등의 기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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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다.” [이에 대해] 곽박이 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무려는 산 이름이다. 지금 요동에 있다.” 『속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요동 무려현주 004
각주 004)
이 구절은 『後漢書』 郡國志, 幽州 遼東屬國 조에 “無慮, 有醫無慮山”이라 했던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漢代 無慮縣은 遼東郡의 속현으로서 그 현명은 醫巫閭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漢代 遼東郡의 西部都尉의 치소가 설치(『漢書』 卷23 地理志 遼東郡)되었을 정도로 遼西 동부 지역의 요충지였으며, 오늘날 北鎭市 남쪽 寥屯鄕 大亮甲村 故城止로 비정된다고 한다(孫進己 主編, 『東北歷史地理』 1 1988, 277~27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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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의무려산이 있다.”
 
• 참고
『周禮』 職方氏 東北曰幽州 其山鎭曰醫無閭
『爾雅』 九府 東方之美者 有醫無閭之珣玗琪焉 〈晉郭璞注 醫無閭 山名 今在遼東 珣玗琪 玉屬〉
『後漢書』 志23 遼東屬國 昌遼 故天遼 屬遼西 賓徒 故屬遼西 徒河 故屬遼西 無慮 有醫無慮山 險瀆 房 有青城山

  • 각주 001)
    「軄(職)方」은 『周禮』의 편명이자 官名(夏官) 職方氏의 준말이다. 『周禮』 夏官司馬 下, 職方氏에 따르면 職方氏는 천하의 지도와 사방의 貢賦를 맡았다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鑿無閭’에서 ‘鑿’은 ‘毉’의 오기로 보인다. 같은 주문의 다른 구절에서는 ‘毉’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周禮』 夏官司馬下 職方氏에서는 “東北曰幽州 其山鎭曰醫無閭”라고 하여 ‘毉無閭’를 ‘醫無閭’라 쓰고 있고, 마찬가지로 『漢書』 地理志上에서도 “東北曰幽州 其山曰醫無閭”라 하고 있으며, 주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續漢書』(『後漢書』 郡國志)에서도 “無慮 有醫無慮山”이라 하고 있다. ‘毉’와 ‘醫’는 음과 뜻이 서로 같은 이형동의자로 곧 ‘毉無閭’는 ‘醫無閭’를 말하는 것이다. 이 醫無閭는 후대에 “醫巫閭”로 표기가 정착되는데, 현재 醫巫閭山은 중국 요령성 錦州市 관할 北鎭市 부근에 위치해 있다. 한편 6세기 말~7세기 초 이 지역에 고구려 武厲城이 세워져 요서에 자리 잡은 고구려 서변의 최전선 군사 거점으로 기능하였다는 견해가 최근 제기된 바 있다(이성제 「高句麗의 西部 國境線과 武厲邏」 『대구사학』 113, 2013, 17~20쪽). 즉 武厲邏(新民市)와 武厲城을 같은 실체로 보던 그간의 이해와 달리 武厲城을 중국의 옛 無慮縣 일대에 설치된 고구려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아가 고구려는 6세기 전반 요서 일대로 진출하여 이후로 隋代(6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중국과의 경계를 의무려산~대릉하 하류 일대에 두고 있었다는 신설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이성제, 「高句麗와 北朝의 경계」 『고구려발해연구』 97, 2016, 50~53쪽). 이러한 논의를 경청할 때, 『翰苑』의 주문에서 漢代의 無慮縣과 醫巫閭山을 고구려와 연관시키고 있는 데에는 이 지역이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인식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醫無閭山에서 나는 玉類로서, 이와 관련하여서는 주문에 인용된 『爾雅』 구절(『爾雅』 九府 “東方之美者 有醫無閭之珣玗琪焉”【晉郭璞注 醫無閭 山名 今在遼東 珣玗琪 玉屬】) 말고도 『淮南子』 墬形訓의 “東方之美者 有醫毋閭之珣玗琪焉”, 『說文』 玉部의 “醫無閭之珣玗琪 周書所謂夷玉也” 등의 기록을 볼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 구절은 『後漢書』 郡國志, 幽州 遼東屬國 조에 “無慮, 有醫無慮山”이라 했던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漢代 無慮縣은 遼東郡의 속현으로서 그 현명은 醫巫閭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漢代 遼東郡의 西部都尉의 치소가 설치(『漢書』 卷23 地理志 遼東郡)되었을 정도로 遼西 동부 지역의 요충지였으며, 오늘날 北鎭市 남쪽 寥屯鄕 大亮甲村 故城止로 비정된다고 한다(孫進己 主編, 『東北歷史地理』 1 1988, 277~278쪽 참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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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기]는 빛깔이 빼어났으니, 첩첩산중에 색을 보태었고, 자료번호 : hw.k_0002_0060_0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