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태백산성

太白山城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조선
  • 위치
  • 원소장처
    황해북도 평산군 산성리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황해북도 평산군 산성리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에 있는 예성강을 자연 해자로 삼고, 예성강과 예성강 지류 기슭의 바위절벽과 태백산의 험한 지형을 이용하였다. 가운데 골짜기를 감싸고 그 주위에 산봉우리들과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산성이다.
유적개관
포곡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2.425km인 석축 산성이다. 잘 남아있는 곳의 성벽 높이는 7m가량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각 방향마다 하나씩 있으며, 동문과 서문에는 문루가 남아있다. 서문은 1770년에 개축되었고, 1777년에는 동문루가 개축되었다. 치는 모두 5곳이 확인되었다. 동문 일대에서 고구려의 기와편이 확인됨에 따라, 고구려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참고문헌
「조선유적유물도감」3-고구려편1, 1989
해설
황해북도 평산군 산성리 태백산에 있는 산성이다. 본래 성황산성으로 불려오다 조선시대에 성을 보수하고 태백산성으로 고쳤다. 태백산의 산세와 능선을 이용해 성을 쌓았으며, 동쪽은 예성강을 자연 해자(垓字)로 삼으면서 자연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이용하였다. 가운데 골짜기를 감싸고 그 주위에 산봉우리들과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의 전체 둘레는 2.425km이며 잘 남아있는 곳의 성벽 높이는 7m 가량이다. 성벽은 다듬은 돌로 쌓았는데, 성 아래부터 4단까지는 계단식으로 쌓았고 그 위부터는 곧게 쌓았다. 방어시설로는 치(雉)성가퀴가 있는데 치의 경우 5개소에 너비와 길이가 4.55m의 규모로 설치되었으며 성가퀴는 흔적만 있으나 평산군지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206개의 타구와 1,031개의 활 쏘는 구멍, 1,026개의 포 쏘는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성문은 사방에 하나씩 있으며, 동문과 서문에는 문루(門樓)가 남아있다. 서문은 1770년에 개축되었고, 1777년에는 동문루가 개축되었다. 동문의 축대는 성벽을 보강하면서 주변 성벽보다 한 단 뒤로 후퇴하여 성문이 놓이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옹성(甕城)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성안의 시설로는 연못과 우물들이 있어 수원(水原)이 풍부했으며 소금창고, 식량창고, 무기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유금필(庾黔弼), 배현경(裵玄慶)을 제사지내던 태사사(太師祠)가 있었다. 동문 일대에서 고구려의 기와편이 확인됨에 따라, 고구려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태백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70_007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