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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청암리토성

淸岩里土城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위치
  • 관련자료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청암리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평양 대성구역 청암동에 위치해 있다. 성의 남쪽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합장강이 대동강으로 흘러든다. 청암동토성은 평양성과 안학궁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성에서 동북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는 대성산성이 있다.
유적개관
일제강점기에 토성 현황도가 작성되었으며, 토성내 사지가 발굴조사된 바 있다. 1990 년대 중반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에서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청암동토성의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반달모양이며, 전체 둘레는 약 3,450m이다. 북문지 일대는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성벽 기저부의 너비는 17m, 상단부의 너비는 1m이며, 잔고는 약 5m이다. 다른 토성의 성벽은 대부분 유실되어 일부에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조사된 바에 따르면 고구려 시기에 세 차례에 걸쳐 성벽 바깥 부분이 보강되었는데, 현재의 성벽 아래에서 고구려 이전 시기에 축조된 토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토성의 중앙부에는 8각탑을 비롯한 1탑 3금당식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는데, 해당 절터를 498년 문자명왕(文咨明王)이 건립하였던 금강사(金剛寺)로 비정하기도 한다. 토성 내에서 출토된 기와 등을 근거로 고구려가 국내에서 평양으로 천도할 당시의 평양성(平壤城)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조선고고연구」1998-2
「조선고고연구」2000-1
해설
평양 대성구역 청암동에 위치해 있다. 성의 남쪽에는 금수산과 대동강이 있고, 동쪽에는 합장강이 대동강으로 흘러든다. 청암동토성은 평양성과 안학궁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성에서 동북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는 대성산성이 있다.
성의 길이는 총 5km로 남북보다는 동서로 긴 반월형의 성인데 서쪽 성벽은 금수산 능선을 따라 쌓고, 동쪽은 대동강의 절벽을 성벽으로 삼았다. 따라서 북쪽과 서쪽에서 보면 구릉지대의 평지성처럼 보이지만, 남쪽과 동쪽에서 보면 높은 절벽 위에 쌓은 성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성벽은 석축으로 되어 있고 일부만 토축으로 되어 있는데 이 토축은 일정 두께씩 펴서 다지는 판축기법으로 축조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토성 현황도가 작성되었으며, 토성 내 사지가 발굴조사된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에서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북문지 일대는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성벽 기저부의 너비는 17m, 상단부의 너비는 1m이며, 잔고는 약 5m이다. 다른 토성의 성벽은 대부분 유실되어 일부에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조사된 바에 따르면 고구려 시기에 세 차례에 걸쳐 성벽 바깥 부분이 보강되었는데 현재의 성벽 아래에서 고구려 이전 시기에 축조된 토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토성의 중앙부에는 8각탑을 비롯한 1탑 3금당식의 건물지가 발견되면서 청동제품, 토기, 붉은 기와편 등 고구려 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에 해당 절터를 498년 문자명왕(文咨明王)이 건립하였던 금강사(金剛寺)로 비정하기도 한다.
청암리토성은 427년 고구려의 평양 천도 당시 후보지 중에 하나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성 내에서 출토된 기와 등을 근거로 고구려가 국내에서 평양으로 천도할 당시의 평양성(平壤城)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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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리토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010_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