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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순흥 어숙묘

順興 於宿墓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산95번지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읍의 비봉산 남쪽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사된 고분으로, 1935년경 도굴로 인해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석실 내부에 일부 벽화가 남아있다. 천장에는 연꽃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문 안쪽에 을묘년어숙지술간(乙卯年於宿知述干)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신라 진평왕 595년에 건립된 고분으로, 술간은 신라의 관직명이고, 어숙은 고구려 계통의 사람 이름이다.
참고문헌
발굴보고서
해설
소백산맥 비봉산(飛鳳山) 서남쪽 해발 약 300m 구릉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10여기의 신라고분이 존재하며 1km 거리에 ‘영주순흥벽화고분(榮州順興壁畵古墳)’이 있어 ‘읍내리고분군’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1935년경 도굴된 이후 벽화가 있는 고분임을 알았다고 하며,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무덤은 석실을 만들고 입구에서 석실까지 연도(羨道, 널길)를 만든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석실의 입구에는 돌로 문을 만들었고 돌문[石門/石扉/門扉]에는 손잡이 고리를 달았던 구멍 흔적이 확인되었다.
석실의 네 벽과 돌문, 연도에는 회(灰)를 도포하고 그 위에 벽화를 그리고 붉은색, 노란색 등
으로 채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굴의 피해가 심해 발견된 유물은 쇠 조각과 토기 편 일부 외에 전혀 없으며, 도굴과정과 이후 침습에 의해서 벽면의 회칠이 거의 탈락되면서 벽화의 대부분도 훼손되었다.
확인할 수 있는 벽화는 연도의 천장과 석문의 바깥 면과 안쪽 면에 불과하다. 연도 천장에는 지름 60cm에 이르는 커다란 연꽃 문양을 그렸다. 연꽃은 활짝 핀 상태를 표현했으며 7개의 꽃잎을 2겹으로 그려 노란색과 붉은색, 검은색을 이용하여 채색하였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의 연꽃이 6엽 혹은 8엽인 것과는 다른 방식이며, 꽃술과 세부 표현 방식도 여타의 형식과는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석실을 막은 석문의 바깥 면에는 세 명의 인물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훼손이 심하여 앞 인물이 치마를 입었다는 것과 뒤편 두 인물은 손을 모으고 바지를 입은 것만이 확인된다. 앞의 인물은 여주인, 뒤의 두 인물은 시종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피장자와의 관계 등은 파악할 수 없다.
문의 뒤편에서는 ‘乙卯年於宿知述干(을묘년어숙지술간)’이라는 묵서명문(墨書銘文)이 확인되었다. 즉 무덤은 을묘년에 만들어졌고, 피장자는 술간 ‘어숙’이라는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술간(述干)은 신라에서 한시적으로 운용되었던 관등 명칭으로, 신라의 영역확장 과정에서 6세기 초 지방의 세력가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부여했던 외위(外位) 등급 중 하나이다. 이를 통하여 이 무덤이 6세기 이후 조성된 신라무덤임이 확인되었다.
어숙묘가 위치한 순흥은 소백산맥을 넘은 고구려가 신라와 접경했던 지역으로, 이 과정에서 고구려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순흥어숙묘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삼국시대 벽화고분이라는 자체로 소중한 유적이며, 소백산맥 이남에 형성된 고구려와 신라의 문화교류 일면, 또 당시 신라의 지방통치를 파악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사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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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흥 어숙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3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