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풍촌조(豐村造; 도요무라노미야츠코)

풍촌조(豐村造; 도요무라노미야츠코)
 백제국(百濟國) 사람 덕솔(德率) 고증부좌(古曾父佐; 고소후사)의 후손이다.
 
【주석】
1. 풍촌조(豐村造)
풍촌(豐村; 도요무라)이라는 씨명은 지명이나 직명 등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지명이나 직명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풍촌씨는 미칭에 의거한 씨명일 수도 있다.
풍촌조(豐村造)는 여기에만 보인다.
『일본기략(日本紀略)』 연력(延曆) 22년(803) 4월 계묘조에 “견당대사(遣唐大使) 갈야마(葛野麿) 등이 그달 14일에 배가 난파진(難波津)을 출발하였으나, 폭우를 만나 배가 부서지는 피해를 입었다. 이때 명경청익(明經請益) 대학조교(大學助敎) 풍촌가장(豐村家長)이 행방불명되었고 물에 빠진 자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아뢰었다. 이 기사에 나오는 풍촌가장은 성이 빠져 있지만 조(造) 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본조 풍촌조씨의 일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덕솔고증부좌(德率古曾父佐)
덕솔은 백제의 관위 16계 가운데 제4위에 해당된다.
고증부좌(古曾父佐)는 여기에만 보인다.
『일본서기』 현종(顯宗) 3년 시세조에는 “백제왕(百濟王)이 크게 노하여 영군(領軍) 고이해(古爾解)와 내두(內頭) 막고해(莫古解)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대산(帶山)을침공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 개로왕 21년 9월조에 백제의 장군 재증걸루(再曾桀婁)와 고이만년(古爾萬年)의 분주에 재증(再曾)과 고이(古爾)는 모두 복성(複姓)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고증부좌의 고증도 백제의 복성이라 볼 수 있다.
풍촌조는 여기에만 보이고, 풍촌조씨가 조상이라 주장하는 덕솔 고증부좌 역시 여기에만 보인다. 따라서 세운 조상이 의문스럽고 풍촌조씨와 덕솔 고증부좌의 관계를 입증해 줄 내용이 「고기」 와 「구전」 등에 존재하지 않아서 미정잡성에 기재된 것이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풍촌조(豐村造; 도요무라노미야츠코)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120_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