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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2) 성벽조사

크라스키노성에서는 두 지점에 대해 성벽 절개조사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의 지점은 서벽의 북쪽 부분에 위치하는데 1997년과 1998년에 조사가 되었다. 두 번째의 지점은 동벽의 치 부분에 위치하는데20 04년에 조사가 되었다. 두 곳 모두 성벽을 속은 흙을 다짐을 하여 채우고 양쪽 겉은 석축을 한 일종의 토심석축성벽이었다.
서벽 북쪽 부분에서 성벽 절개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제14구역이다(도면 597~605). 이곳은 성내 서북지역의 북부 사찰구역과 남부 주거구역 사이에 축조한 석축담장의 서쪽 끝부분과 성 서벽이 만나는 곳의 남쪽 바로 가까이에 해당한다. 이곳의 성벽은 두 단계에 걸쳐 축조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른 단계 성벽은 석축을 한 내벽과 외벽이 있었고 그 사이는 흙으로 메웠다. 외측 석축은 전체 높이가 약 2.6m, 두께가 1.4~1.8m이다. 외측 석축의 외면은 너비가 약 0.4~0.8m이고 두께가 0.3m까지인 돌을 8~9층 쌓았다. 외측 석축의 내면은 돌을 6~7층으로 쌓았고 높이가 0.9~1m이다. 외측 석축의 외면과 내면 모두에는 기저부에 두께가 4~6㎝인 판돌 1층을 기단으로 삼았다.
도면 597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표토 제거 후 평면도(1997)
도면 598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윗부분 모습(밖에서)(1997)
도면 599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과 해자 평면도(1997)
외측 석축은 내측 석축에 비해 0.4~0.6m가 더 높은데 여장일 것으로 추정되었다(도면 600~602). 그런데 여장으로 추정되는 구조물보다 더 높은 레벨로 성벽의 외축에 사질점토와 사질토를 교대로 덮고 그 위로 자갈을 다시 덮은 것이 확인되었다. 추정 여장 위는 증축의 결과로 판단되었다.
도면 600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과 해자 단면도(1997)
도면 601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외벽 외면 입면도(1997)
도면 602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외벽 외면 모습(1997)
내측 석축의 내면은 돌을 7층으로 쌓았고, 기단이 있으며, 현존 높이는 1.1~1.2m이다(도면 603~605). 내측 석축의 아래층은 높이가 0.4m까지인 횡단면이 방형인 큰 돌들을 사용하였다. 위층들의 돌들은 높이가 10~15㎝이다. 내측 석축은 안쪽에만 돌을 쌓았고 외측 석축과 2.2m 떨어져 있다.
도면 603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내벽 내면 모습(1997)
도면 604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내벽 내면(앞쪽)과 외벽 내면(안쪽) 및 배수구 입수구 모습(성벽 안쪽에서)(1997)
도면 605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내벽 내면(앞쪽)과 외벽 내면(안쪽) 모습(성벽 안쪽에서) (1997)
서벽 북쪽 부분에서는 성벽의 바닥 부분에서 배수로가 조사된 것이 있다(도면 606~609). 배수로는 2개의 평행하는 석벽을 세우고 그 위를 판돌로 덮어 만들었다. 배수로는 외형 전체가 높이 0.7~0.9m, 너비 1~1.2m이다. 성벽 내측 면석 안쪽에서 외측 석축 내면까지 2.7m 길이가 확인되었다. 내측 면석 부분의 배수로 입수구는 높이 0.5m, 너비 0.4m이다. 배수로의 바닥에는 자갈돌과 와편을 깔았다. 배수로의 바닥은 석벽 아래 가장자리보다 10~15㎝가 더 높다. 배수로의 깊이는 20~30㎝이고, 너비는 40~50㎝이다. 배수로 바닥은 바깥쪽이 안쪽에 비해 15~20㎝가 낮다. 배수로에 의해 외측 석축의 내면이 파괴되었다. 때문에 배수로는 증축을 할 때에 원래 쌓은 석축 성벽을 절개하고 그곳에 큰 돌들로 배수로를 만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증축이 필요하게 된 것은 당시 성내 성벽 가까이의 저지에 모이는 지하수를 배출할 필요성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도면 606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내 배수로 평단면도 및 입면도(1998)
도면 607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내 배수로 노출 모습(1997)
도면 608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내 배수로 모습(1998)
도면 609 | 크라스키노성 서벽 북쪽 부분 제14구역 성벽 내 배수로 모습(1998)
성벽의 외측 석축에서 밖으로 1.5m 거리의 생토에서는 너비 약 2m, 깊이 0.3~0.4m의 작은 해자 흔적이 확인되었다(도면 599; 600). 이 해자의 내부퇴적토에서 토기편, 동물 뼈, 나무 쪼가리 등이 발견되었다.
내측 석축의 북쪽 부분과 남쪽 부분이 사용한 성 돌의 석재가 차이가 나고 또 돌을 쌓은 방법이 차이가 난다. 이 사실은 성벽의 여러 구간들이 독자적으로 석재를 채취하여 가져온 서로 다른 집단들에 의해 축조되었음을 혹은 각 구간의 석재를 서로 다른 곳에서 가져왔음을 말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성벽 축조는 초축과 증축 모두 발해시기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것은 성내는 물론이고 성벽에서도 발해 이전과 이후의 유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벽 위 자갈층에서 8세기 중엽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당나라의 반달이 있는 개원통보가 1점 출토된 것이 있는데 이 역시 증축이 발해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주 001
각주 001)
Ивлиев А.Л., Болдин В.И., Никитин Ю.Г., Новые сведения о фортификации бохайских городищ // Археология и этнология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 Центаральной Азии, Владивосток, 1998, 155쪽.
겔만 E.I., 이블리예프 A.L. 「크라스키노성의 축성」, 『발해 염주성 이야기』, 청아출판사, 2017,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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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서벽 북쪽 부분의 초축의 상대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과거의 제14구역을 일부 포함하는 2018년도 제51구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새로운 자료가 확인되었다(도면 610~612). 이곳에서는 성벽의 내측 면석과 함께 5개의 도로 생활면이 조사되었다. 그런데 가장 아래의 제5생활면 도로가 성벽 기단보다 더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 사실은 성벽이 축조되기 전이 이미 도로가 존재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제5생활면 도로는 사찰구역과 주거구역을 구분하는 석축담장의 아래로 나있었는데 ‘중간 생활면’의 금당으로 향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성벽 자체는 제4생활면 도로 레벨에서 축조되었다. 따라서 서벽 북쪽의 성벽은 이것에 사람들이 거주한 일정 기간 후에 축조되었음이 분명하다.
도면 610 | 크라스키노성 제51구역 성벽 내벽 내면 입면도(2018)
도면 611 | 크라스키노성 제51구역 성벽 내벽 내면 모습(2018)
도면 612 | 크라스키노성 제51구역 성벽 내벽 내면과 도로 부분 토층 모습(2018)
동문지 남쪽 가까이의 동벽 절개조사에서는 동벽도 서벽과 동일한 축조기법에 의해 축조되었음을 보여 주었다(도면 615).

  • 각주 001)
    Ивлиев А.Л., Болдин В.И., Никитин Ю.Г., Новые сведения о фортификации бохайских городищ // Археология и этнология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и Центаральной Азии, Владивосток, 1998, 155쪽.
    겔만 E.I., 이블리예프 A.L. 「크라스키노성의 축성」, 『발해 염주성 이야기』, 청아출판사, 2017, 78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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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벽조사 자료번호 : kr.d_0016_0020_009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