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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대성리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4~2005
  • 시대
    신석기~조선
  • 위치
  • 원소장처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618-11번지
  • 시대
    상고사
  • 유형
    기타
입지
경춘선복선전철 사업으로 인해 2004년에 기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2005년 12월까지 조사됨.
유적개관
발굴구역은 편의상 북쪽의 A지구와 남쪽의 B지구로 구분하였는데, 원삼국시대의 취락과 관련되는 유구로는 A지구에서 주거지 26기, 수혈 27기, 굴립주 2기, 주혈군 2곳, 주 2기가 확인되었다. B지구에서는 주거지 10기, 수혈 3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구조는 북한강유역과 한반도 중부지방 철기시대주거지의 기본구조인 철(凸)자형과 여(呂)자형 주거지가 대부분이며 방형주거지와 말각방형 혹은 원형도 확인된다.
출토유물
* 주조철부, 주조철복편, 단조철호편, 철경동촉, 연질과 경질의 타날문토기류, 다량의 중도식토기와 연질과 경질의 갈색, 회색, 회청색의 격자문과 승석문을 타날한 토기, 낙랑계 토기류 등
참고문헌
이건무 외, 「한강유역지표조사보고서」-「중도」진전보고Ⅰ, 1980
「경춘선(망우-춘천) 복선전철사업구간내 문화재지표조사약보고서」, 한림대학교박물관, 1998
「가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강원대학교박물관·가평군, 1999
「경춘선복선전철 사업구간(제4강구) 내 대성리유적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 2005
해설
가평군은 한반도 중부내륙 중심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강원도 화천, 서남으로 경기도 포천과 연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해발 1,468m의 화악산, 서북쪽으로는 해발 936m의 현등산, 해발 1,267m의 명지산이 위치하며 남쪽에는 북한강이 동에서 서쪽방향으로 흐른다. 강변의 주변에는 분지와 충적대지가 길게 형성되어 있다.
대성리는 북한강의 서쪽 강변으로 서쪽에는 깃대봉에서 파위고개로 이어지는 해발 600m 정도의 산지에서 북한강쪽으로 뻗어내린 해발 200m 전후의 봉우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유적은 하안충적지의 자연제방에 입지한다. 북한강 주변의 구릉과 충적평야에는 청동기시대 대형 취락이 확인된 달전리유적을 비롯하여 삼회리 유물산포지, 항사리유적, 대곡리유적, 마장리유적, 이곡리유적 등 많은 유적이 분포한다.
경춘선복선전철 사업구간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확인되었다. 1998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2003년 경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시굴조사가 이루어져 전면발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04~2006년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집자리를 비롯하여 구덩유구, 도랑, 경작유구, 굴립주건물지, 돌방무덤 등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는 집자리 27기와 구덩유구 6기, 경작유구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대개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 강의 흐름을 따라 열상으로 축조되어 있다. 집자리는 평면 방형과 장방형으로 조기와 전기, 후기로 구분할 수 있다. 조기에 해당하는 집자리는 25호와 26호로 이른바 미사리유형에 해당하는 구조이다. 25호의 크기는 길이 1,006㎝, 너비 657㎝로 장방대형이다. 중앙부에서 남벽쪽으로 치우쳐 조성된 화덕자리는 바닥 중앙에 판석을 깔고 주변에 천선을 둘려 만든 석상위석식 화덕자리이다. 26호에서는 직경 20~38㎝ 크기의 기둥구멍과 직경 74㎝ 크기의 저장공이 확인되었다.
나머지 25기는 전기~중기에 해당하는 집자리이다. 상당수는 집자리 한켠 바닥에 진흙다짐을 하여 침상이나 작업장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진흙다짐이 된 지역 내부에서는 작업공이 확인된다. 바닥면 중앙에는 원형으로 얇게 굴착하여 조성한 화덕자리 1~3기가 조성되어 있다. 화덕자리 사이에는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설치되어 있으며 벽가 또는 벽가 내측에도 다수 배치되어 있다. 모서리 벽면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공이 다수 확인된다. 가장 규모가 큰 집자리는 13호 집자리로 평면 세장방형이며 길이 1,028㎝, 잔존 너비 335㎝이다. 평면 원형과 방형의 구덩유구는 모두 6기가 조사되었다. 그 중 1호는 평면 원형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장축 376㎝, 단축 360㎝, 깊이 146㎝이다. 경작유구는 남북길이 약 21m, 동서길이 9.6m의 범위에 분포한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지만 평면 격자형을 띠는 패턴을 보이는바 경작유구로 추정된다.
유물은 즐문토기, 골아가리토기, 겹아가리단사선문토기, 단사선토기, 구멍무늬토기, 호형토기, 적색마연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토기류와 간돌도끼, 반달돌칼, 대팻날도끼, 가락바퀴, 갈돌과 갈판, 숫돌, 돌창, 갈돌, 갈판, 원판형석기, 달도끼, 첨두기, 간돌검, 돌창, 간돌화살촉, 돌끌, 그물추, 격지 등의 석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시기 구분은 여러 견해가 제시된 바 있지만 최근 덧띠새김무늬토기와 삼각만입형 간돌화살촉, 석상위석식 화덕자리를 표지로 하는 미사리유형을 조기로 설정하고 구멍무늬토기와 겹아가리토기를 전기, 송국리식토기를 중기로 하는 시기 구분안이 제기되고 있다. 조기를 부정하는 입장도 많지만 미사리유형이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유구 양상을 보인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부 유적은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한 시점까지 연대가 상향되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전이되는 전환기로 볼 수 있다. 대성리에서 발견된 미사리식 집자리가 이 시기까지 올라가지는 않지만, 구멍무늬토기가 발견되는 집자리에 비해 이른 시기에 조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25호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2945±20 BP)가 구멍무늬토기가 출토되는 17호 집자리(2805±20 BP)에 비해 이르게 측정된 점도 그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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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20_0080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