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연하리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6
  • 시대
    청동기~조선
  • 위치
  • 원소장처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 일원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2006년 청평-현리간 도로 확·포장공사부지에 대한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2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유적개관
상동천변에 형성된 충적대지로 주변 일대는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주거지의 바닥은 사질이 강한 점토를 얇게 깔았으며 중앙에는 토광위석식 노지가 설치되어 있다. 1호 주거지에서는 호형토기 3점, 장경호 1점과 각목돌대문 토기가 출토되었다. 주거지 상면에는 조선시대 건물 유구의 흔적이 중복되어 확인된다.
출토유물
* 장방형 석도, 석부, 삼각만입촉, 방추차, 천공구, 갈돌 및 갈판등
참고문헌
「청평-현리 도로건설공사 예정구간 문화재 발굴조사 지도 위원회 자료집」, (재)한백문화재연구원, 2006
「청평-현리 도로건설공사 예정구간 문화재 연장발굴조사(A-다지구) 지도위원회 자료집」, (재)한백문화재연구원, 2006
해설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에 위치한다. 가평군은 동쪽으로 강원도 춘천시, 홍천군과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남양주와 접해있다. 남쪽은 양평군, 북쪽은 포천군, 화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한반도의 중부내륙을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달리는 광주산맥의 한 가운데 자리한 전형적인 내륙 산악지형이다. 광주산맥의 주능선은 포천군과 가평군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광주산맥은 태백산맥 북단의 철령 부근에서 시작하여 남서방향으로 팔당에 이르기까지 북한강 유역과 임진강유역 간의 분수계를 형성하고 있다. 연하리는 가평군의 서쪽에 위치하며 주변은 주금산, 상산, 청우산 등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유적은 조정천의 지류인 상동천(반계천) 주변의 충적대지에 위치한다. 남쪽에 위치한 항사리유적에서는 원삼국시대 凸자형, 여자형, 육각형, 방형 집자리가 위치한 대규모 취락이 조사되었다. 덕현리유적에서는 凸자형 집자리와 구덩유구 등 원삼국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평-현리 국도 37호선 도로 개설 공사를 실시하기에 앞서 2002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지표 조사 결과 조종천과 지류 주변 충적대지와 인접한 구릉 3곳에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2003년 동 기관에 의해 연하리(A지구), 항사리(B지구), 덕현리(C지구)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A지구에서는 조선시대 유구 1기와 미상의 추정 밭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B지구는 가구역에서는 성격 미상의 구덩유구 14기와 추정 부뚜막 1기, 석렬유구 4기가 확인되었고, 나구역에서는 석렬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C지구에서는 집자리 3기와 석렬유구 1기, 기타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상동천 동남쪽 구릉정상부 일대 조선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A지구인 연하리유적에 대한 발굴은 2006년~2007년에 걸쳐 한백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3개 지구(가~다)에서 조사가 이루어져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집자리와 적심건물지, 야외 화덕자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가지구는 과거 과수원으로 이용된 곳이다. 밭 유구(이랑)이 국지적으로 확인되었고 분청자 호, 백자 대접, 토기 아가리편이 출토되었다. 나지구는 소하천과 상동천 사이 충적지에 해당한다. 조사결과 문화층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지구는 상동천 북쪽 위치한 충적대지로 현재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시굴조사 시 조선시대 유구 1기가 확인되었는데 발굴결과 이 지점에서는 조선시대 집자리 12기와 적심열(건물지), 청동기시대 집자리 3기와 곁 놓여 발견되거나 단독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구들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여기에서는 백자. 동이, 도기항아리, 기와, 철제 낫과 호미, 철정, 철솥, 철제 화살촉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하천변에서 북쪽으로 20m 정도 따라서 강 흐름과 나란한 방향으로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1호는 평면 장방형으로 크기는 1400×620×30~35cm, 면적은 86.8㎡이다. 바닥면 중앙에는 장방형으로 얇게 굴착한 후 강돌과 깬돌을 돌려놓아 조성한 토광위석식 화덕자리 1기가 시설되었다. 집자리 북동쪽 모서리에는 3개의 저장용 항아리가 일렬로 배치되었다. 내부 바닥면에는 지붕의 서까래로 추정되는 탄화 목재가 다량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바닥면은 사질의 진흙을 5㎝ 정도 얇게 깔았다. 2호는 평면 방형으로 크기는 320×310×10cm, 면적은 9.92㎡이다. 바닥면은 사질의 진흙을 얇게 깔았다. 13호는 평면 장방형으로 크기는 980×800×40cm, 면적은 78.4㎡이다. 바닥에는 사질의 진흙을 깔아 다져 조성하였다.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덧띠새김무늬토기, 골아가리꼭지형손잡이토기, 흑색마연토기, 곁아가리토기, 호형토기, 민무늬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토기류와 간돌도끼, 반달돌칼, 대팻날도끼, 가락바퀴, 갈돌과 갈판, 숫돌, 간돌화살촉, 고리형간돌도끼, 공이, 돌보습 등의 석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연하리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유물 양상과 방사성탄소연대(3030±60 BP, 3070±50 BP, 3000±60 BP, 3090±60 BP)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출토 사례가 드문 기장이 다량 출토되었다는 점은 남한지역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초기 농경의 시작 시점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증거로 학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로 평가된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연하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20_008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