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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강문동 철기시대 유적

  • 저필자
    오용제
  • 날짜
    1992
  • 시대
    철기시대(원삼국)
  • 위치
  • 원소장처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136-1번지 일원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1992년 초당식품공장 신축시 발견되었으며, 강릉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개관
조사결과 파괴된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구조는 장방형으로 규모가 상당히 크고 수혈의 깊이 역시 매우 큰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기둥구멍이 북동쪽에서 5개, 중앙의 화덕자리 옆에서 1개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동편 모서리에서는 판자 모양의 숯이 안으로 넘어진 상태로 나온 것으로 보아 아마도 판자벽으로 보이며, 판자벽 안쪽에는 기둥을 세워 기둥과 벽체 사이에는 판자로 막음하였다. 화덕의 위치는 주가지 정중앙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위치하였고, 화덕의 주변에 인접하여 저장용 토기들이 안치되는데 강문동의 이러한 주거지 구조는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구조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
* 토기류는 순수 경질무문토기로서 직립구연호 3점, 외반구연호 9점, 유경식외반구연호 1점, 넓은바리 1점과 구연부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그릇 5점, 토제방추차와 목제방추차가 1점씩 출토됨.
참고문헌
「문화유적분포지도」, 강릉대학교박물관, 1998
「강릉강문동주거지」, 「강릉동덕리주거지」, 강릉대학교박물관, 1997
해설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철기시대 생활유적으로, 경포호 남쪽 동해안 해안사구에 위치한다. 1992년 초당식품공장 신축 과정에서 유적이 확인되어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철기시대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파괴가 심하여 형태가 온전하지는 않으나 남아있는 모습으로 볼 때 원래 크기는 10.7×6.2m(면적 66.3m2)이며 장방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에는 모래층 위에 진흙을 7~10cm 두께로 평탄하게 깔았으며, 벽면을 따라 기둥구멍이 배치되었고, 바닥 중앙부에서는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화덕은 남쪽은 진흙으로 막고 나머지는 돌을 둘러 사용하였다. 조사 당시 지붕 구조물이 불에 타 무너져 내린 흔적이 바닥 곳곳에 남아있었으며 벽 쪽에는 벽체로 사용되었을 불에 탄 나무판자가 확인되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불에 탄 흔적으로 볼 때 당시 가옥은 불이 나서 폐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 바닥에서는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를 비롯하여 많은 양의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화덕 내부에서는 토기 1점이 출토되었고, 집자리 북동쪽 벽을 중심으로 많은 양의 토기가 확인되었다.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토기만 11점 출토되었으며 대부분 경질무문토기이다발견된 경질무문토기는 직립구연호 3점, 외반구연호 9점, 유경식외반구연호 1점, 발(넓은 바리)1점, 기타편 5점이다. 타날문토기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으며 토기 외에는 토제 가락바퀴 1점과 불에 탄 상태로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목제 가락바퀴 1점이 출토되었다. 집자리 주변 지역에서는 다량의 경질무문토기 조각과 함께 타날문토기 조각도 확인되었으며, 시루, 접시, 손잡이, 토기 뚜껑 등도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 타날문토기가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 집자리의 구조가 청동기시대의 구조와 유사하다는 점으로 보아 강문동 집자리는 기원전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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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동 철기시대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1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