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귀가 매근을 도륙하니, 이에 공택에 정착했다.
장귀가 매근을 도륙하니, 이에 공택에 정착했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공도이는 무제가 개척한 바, 공도현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땅이 함몰되어 늪지가 되어 이에 공지라고 이름하였다. 남인들은 공하로 여겼다주 001. 후에 다시 반란하자, 원정 6년(기원전 111)에 한의 병사가 월수수주 002에서부터 이들을 정벌하여, 월군으로 삼았다. 그 토지가 평원하고 논과 밭이 있다. 청령현주 003 우동산주 004에 벽계와 금마가주 005
각주 005)
있어, [신비한] 광경이 때때로 드러난다. [그] 풍속에는 방탕하게 노는 것이 많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니, 장가와 거의 서로 유사하다. 호수들은 방종하여 이들을 제어하기 어렵다. 왕망 때, 군수 매근이 공인 장귀를 선발하여 군후로 삼았다. 경시 2년(24)에 [장]귀가 [그] 종족 사람을 이끌고 매근을 공격해 죽이고, 스스로 공곡왕이 되어 태수의 일을 맡았다. 광무[제]가 장귀를 봉하여 공곡왕으로 삼고, 후에 또한 월수태수의 인수를 주었다주 006.”王褒의 「碧雞頌」에서 “持節使 王褒가 남쪽 산벼랑을 보고 금빛 눈동자를 가진 신마와 푸른 닭을 공손히 옮겨 남쪽의 황무지에 안치하였네. 계곡으로 깊이 들어가 산골짜기로 돌아드니 인간의 마을 아니네. 귀의하고 귀의하리니 한실의 덕이 무궁하기 때문이라네. 당우의 덕을 겸비하였고 그 은택은 삼황과 짝을 이루는 구나.”라고 읊었다. 『華陽國志』에는 “푸른 닭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주 본다”고 하였고, 『漢書音義』에서는 “금과 같은 모습은 말과 유사하며, 청옥과 같은 모습은 닭과 비슷하다”고 하였다(王褒碧雞頌曰: “持節使王褒謹拜南崖, 敬移金精神馬縹碧之雞, 處南之荒. 深谿回谷, 非土之鄕. 歸來歸來, 漢德無疆. (廉平)[廉乎]唐虞, 澤配三皇.” 華陽國志曰: “碧雞光景, 人多見之.” 前書音義曰: “金形似馬, 碧形似雞也.”). 이에 동북아역사재단 『후한서』 「남만서남이열전」 역주에서는 碧雞神과 金馬社로 해석하였다.
• 참고
『後漢書』 卷86 邛都 邛都夷者 武帝所開 以爲邛都縣 無幾而地陷爲汙澤 因名爲邛池 南人以爲邛河 後復反叛 元鼎六年 漢兵自越雟水伐之 以爲越雟郡 其土地平原 有稻田 靑蛉縣禺同山有碧雞金馬 光景時時出見 俗多游蕩 而喜謳歌 略與牂柯相類 豪帥放縱 難得制御 王莽時 郡守枚根調邛人長貴 以爲軍候 更始二年 長貴率種人攻殺枚根 自立爲邛穀王 領太守事 又降於公孫述 述敗 光武封長貴爲邛穀王 建武十四年 長貴遣使上三年計 天子卽授越雟太守印綬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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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5)
王褒의 「碧雞頌」에서 “持節使 王褒가 남쪽 산벼랑을 보고 금빛 눈동자를 가진 신마와 푸른 닭을 공손히 옮겨 남쪽의 황무지에 안치하였네. 계곡으로 깊이 들어가 산골짜기로 돌아드니 인간의 마을 아니네. 귀의하고 귀의하리니 한실의 덕이 무궁하기 때문이라네. 당우의 덕을 겸비하였고 그 은택은 삼황과 짝을 이루는 구나.”라고 읊었다. 『華陽國志』에는 “푸른 닭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주 본다”고 하였고, 『漢書音義』에서는 “금과 같은 모습은 말과 유사하며, 청옥과 같은 모습은 닭과 비슷하다”고 하였다(王褒碧雞頌曰: “持節使王褒謹拜南崖, 敬移金精神馬縹碧之雞, 處南之荒. 深谿回谷, 非土之鄕. 歸來歸來, 漢德無疆. (廉平)[廉乎]唐虞, 澤配三皇.” 華陽國志曰: “碧雞光景, 人多見之.” 前書音義曰: “金形似馬, 碧形似雞也.”). 이에 동북아역사재단 『후한서』 「남만서남이열전」 역주에서는 碧雞神과 金馬社로 해석하였다.
- 각주 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