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왕업이 바야흐로 융성하였으니, 희송(주 성왕)은 숙신이 입조하여 하례한 것을 새겼고,
주의 왕업이 바야흐로 융성하였으니, 희송(주 성왕)은 숙신이 입조하여 하례한 것을 새겼고,
『숙신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에 무왕주 001이 상을 이기고, 구이주 002
각주 002)
와 백만주 003에 길이 통하게 하여, 그들에게 각각 방회주 004를 가져와 바치게 함으로써, 직분과 본업을 잊지 않게 하였다. 이에 숙신은 호시와 석노를 바쳤는데, 그 길이가 한 자 여덟 치였다. 선왕이 그 아름다운 덕이 멀리까지 이르렀음을 밝히고, 후인에게 보여, 길이 거울삼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그 오늬(화살에 활시위를 끼우는 부분)주 005에 새겨 말하길, ‘숙신씨가 공납한 화살[肅愼氏之貢矢]’이라고 하였다. 왕이 또 진호공주 006에게 이를 하사하였다.주 007 성왕 때 다시 들어와 하례하니, 왕이 영백주 008에게 ‘회숙신지명주 009’을 짓게 하였다주 010.” 송은 성왕의 이름이다.「夷」는 동쪽의 오랑캐를 일컫는다. 『禮記』에는 ‘九夷, 八蠻, 六戎, 五狄’으로 등장하고, 『爾雅』에는 ‘九夷, 八狄, 七戎, 六蠻’으로 나와, 「九」가 실제 ‘아홉’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따라 구이의 구체적인 명칭으로, 『後漢書』에서는 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반면, 『論語』의 ‘子欲居九夷’, 『肅愼記』가 인용한 『國語』 및 『史記』의 ‘通道於九夷百蠻’, 『韓非子』의 ‘大難攻 小易服 不如服衆小易劫大 乃攻九夷 而商蓋服矣’ 등에서는 「九」가 실제 ‘아홉’의 의미가 아니라 ‘많다’는 뜻의 형용사로 쓰였다. 특히, 『韓非子』에서는 「九」가 「衆」의 의미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도 「九夷」 뒤의 「百蠻」과 함께 ‘많은 오랑캐’의 의미로 해석된다.
• 참고
『國語』 卷5 魯語下 仲尼在陳 有隼極于陳侯之庭而死 楛矢貫之 石砮其長尺有咫 陳惠公使人以隼如仲尼之館聞之 仲尼曰 隼之來也遠矣 此肅慎氏之矢也 昔武王克商 通道于九夷百蠻 使各以其方賄來貢 使無忘職業于是肅慎氏貢楛矢石砮 其長尺有咫 先王欲昭其令德之致遠也 以示後人 使永監焉 故銘其栝曰 肅慎氏之貢矢以分大姬 配虞胡公而封諸陳 古者 分同姓以珍玉 展親也 分異姓以遠方之職貢 使無忘服也 故分陳以肅慎氏之貢 君若使有司求諸故府 其可得也 使求 得之金櫝 如之
『尙書』 「周官」 武王旣伐東夷 肅愼來賀 王俾榮伯作賄肅愼之命
『史記』 卷4 「周本紀」 成王旣伐東夷 息愼來賀 王賜榮伯作賄息愼之命
『晉書』 卷97 肅愼氏 周武王時 獻其楛矢石砮 逮於周公輔成王 復遣使入賀
『太平御覽』 卷784 肅愼 所引 『肅愼國記』 其檀弓三尺五寸 括矢長尺有咫 石砮皮骨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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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夷」는 동쪽의 오랑캐를 일컫는다. 『禮記』에는 ‘九夷, 八蠻, 六戎, 五狄’으로 등장하고, 『爾雅』에는 ‘九夷, 八狄, 七戎, 六蠻’으로 나와, 「九」가 실제 ‘아홉’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따라 구이의 구체적인 명칭으로, 『後漢書』에서는 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반면, 『論語』의 ‘子欲居九夷’, 『肅愼記』가 인용한 『國語』 및 『史記』의 ‘通道於九夷百蠻’, 『韓非子』의 ‘大難攻 小易服 不如服衆小易劫大 乃攻九夷 而商蓋服矣’ 등에서는 「九」가 실제 ‘아홉’의 의미가 아니라 ‘많다’는 뜻의 형용사로 쓰였다. 특히, 『韓非子』에서는 「九」가 「衆」의 의미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도 「九夷」 뒤의 「百蠻」과 함께 ‘많은 오랑캐’의 의미로 해석된다.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