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리고분군
입지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약 75km 떨어진 대동강 상류에 위치해 있다. 덕천역에서 맹산행 도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남양리가 위치해 있는데, 그 곳에서 북쪽으로 6km가량 떨어진 대동강 저수지(금성저수지) 수몰 지역에 분포해 있다.
유적개관
남양리고분군에서 발굴된 고구려고분은 모두 23기이다. 1호묘의 경우 훼손이 심한데, 연도와 현실로 구성된 단실묘이다. 연도는 우편재이다. 현실은 잘 치석된 석회암판석을 이용한 동북벽을 제외한 나머지 벽은 할석을 이용해 축조하였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m, 너비 2.3m이다. 3호분은 쌍실분으로, 훼손이 심하다. 석실 주변에 강돌들이 동서 길이 6.9m, 남북 6m가량 깔려 있어, 묘역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3호분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무덤의 구조는 연도와 현실로 구성된 단실묘이다. 연도는 우편재이며, 현실의 규모는 길이 2.24m, 너비 1.6m, 높이 1m이다. 천정은 평행삼각고임식이다. 무덤 바닥은 납작한 판석재들을 이용하여 한 벌 깔아 마감하였다.
참고문헌
「조선고고학전서」31, 2009
해설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약 75km 떨어진 대동강 상류에 위치해 있다. 덕천역에서 맹산행 도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남양리가 위치해 있는데, 그 곳에서 북쪽으로 6km가량 떨어진 대동강 저수지(금성저수지) 수몰 지역에 분포해 있다.
남양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고구려고분은 모두 23기이다. 1호분의 경우 훼손이 심한데, 널길[연도(羨道)]와 널방[현실(玄室)]로 구성된 단실묘이다. 널길[연도(羨道)]는 우편재이다. 널방[현실(玄室)]은 잘 치석된 석회암판석을 이용한 동북 벽을 제외한 나머지 벽은 할석을 이용해 축조하였다. 널방[현실(玄室)]의 규모는 길이 2.2m, 너비 2.3m이다. 3호분은 쌍실분으로, 훼손이 심하다. 석실 주변에 강돌들이 동서 길이 6.9m, 남북 6m 가량 깔려 있어 묘역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3호분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무덤의 구조는 널길[연도(羨道)]와 널방[현실(玄室)]로 구성된 단실묘이다. 널길[연도(羨道)]는 동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널방[현실(玄室)]의 규모는 길이 2.24m, 너비 1.6m, 높이 1m이다. 천정은 평행삼각고임식이다. 무덤 바닥은 납작한 판석재들을 이용하여 한 벌 깔아 마감하였다.
남양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고구려고분은 모두 23기이다. 1호분의 경우 훼손이 심한데, 널길[연도(羨道)]와 널방[현실(玄室)]로 구성된 단실묘이다. 널길[연도(羨道)]는 우편재이다. 널방[현실(玄室)]은 잘 치석된 석회암판석을 이용한 동북 벽을 제외한 나머지 벽은 할석을 이용해 축조하였다. 널방[현실(玄室)]의 규모는 길이 2.2m, 너비 2.3m이다. 3호분은 쌍실분으로, 훼손이 심하다. 석실 주변에 강돌들이 동서 길이 6.9m, 남북 6m 가량 깔려 있어 묘역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3호분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무덤의 구조는 널길[연도(羨道)]와 널방[현실(玄室)]로 구성된 단실묘이다. 널길[연도(羨道)]는 동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널방[현실(玄室)]의 규모는 길이 2.24m, 너비 1.6m, 높이 1m이다. 천정은 평행삼각고임식이다. 무덤 바닥은 납작한 판석재들을 이용하여 한 벌 깔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