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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보통문

普通門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조선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중구역 보통문동
  • 시대
    고구려
  • 유형
    건축지
입지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에 위치해 있다.
유적개관
평양성 중성의 서문으로 처음 세워졌으며, 고려시대에도 서경의 서문으로 유지되었다. 보통문은 보통강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사』에는 광덕문으로 표기하고 있고, 그 밖에 무양관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473년(성종 4년)에 중건한 것으로, 1644년, 1719년, 1777년과 그 이후에 계속 보수되었다. 보통문은 15세기 후반이라고 하는 정확한 연대를 가지고 있는 조선초기의 문루건축으로, 주심포식에서 사용된 기법이 다포식에서도 그대로 채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보통문은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축대 위에 문루가 있는 형식으로, 문루는 조선초기의 것이다. 석축의 중앙에 있는 홍예문은 폭 4.4m, 중심높이 4.55m로 균형잡힌 비례를 가지고 있으며, 문에는 철판을 입힌 널대문이 달려있다. 석축의 상부에는 여장을 두르고 석축하단에는 큰 석재를, 상단으로 갈수록 더 작은 부재를 사용함으로써 안정감을 주고 있다. 상층의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하층의 4개의 기둥이 그대로 상층으로 뻗는 통층 2층 누각이며, 5량 구조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된다.
참고문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2006
해설
평양성 중성의 서문으로 처음 세워졌으며, 고려시대에도 서경의 서문으로 유지되었다. 보통문은 보통강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사』에는 광덕문(廣德門)으로 표기하고 있고, 그 밖에 무양관(武陽關)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473년(성종 4)에 중건한 것으로, 1644년, 1719년, 1777년과 그 이후에 계속 보수되었다. 보통문은 15세기 후반이라고 하는 정확한 연대를 가지고 있는 조선초기의 문루(門樓)건축으로, 주심포식(柱心包式)에서 사용된 기법이 다포식(多包式)에서도 그대로 채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보통문은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축대 위에 문루가 있는 형식으로, 문루는 조선초기의 것이다. 석축의 중앙에 있는 홍예문(虹霓門)은 폭 4.4m, 중심높이 4.55m로 균형 잡힌 비례를 가지고 있으며, 문에는 철판을 입힌 널대문이 달려있다. 석축의 상부에는 여장(女墻)을 두르고 석축 하단에는 큰 석재를, 상단으로 갈수록 더 작은 부재를 사용함으로써 안정감을 주고 있다. 상층의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하층의 4개의 기둥이 그대로 상층으로 뻗는 통층 2층 누각이며, 5량 구조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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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문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10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