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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고산동우물

高山洞 井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고산동
  • 시대
    고구려
  • 유형
    생활
입지
평양시 대성구역 고산동에 위치해 있다.
유적개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고구려시기의 우물이다. 우물의 밑바닥은 암반인데 직경 13~16m의 통나무로 50cm 높이의 귀틀을 네모나게 짠 후, 그 밖으로 사암질 석재로 벽체를 쌓았다. 바닥에서 170cm 높이까지는 한 변의 길이 115cm되는 사각형의 벽을 쌓고, 벽 위부터 265cm 구간까지는 팔각의 벽을 쌓았으며, 그 다음부터 원통형으로 쌓아 마감하였다. 벽체는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그 두께가 50cm인데 석재들이 서로 맞물리도록 견고하게 쌓았다. 우물의 깊이는 현재 7.5m인데 우물의 윗부분이 허물어진 것과 지금의 지표에서 1.5m 내려가서 우물의 축석상태가 드러난 모습을 고려한다면 원래는 9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 고구려 토기, 기와, 벽돌, 마구, 숫돌
참고문헌
「조선고고연구」86-1, 1986
해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고구려 시기의 우물이다. 우물의 밑바닥은 암반인데 직경 13~16cm의 통나무로 50cm 높이의 귀틀을 네모나게 짠 후, 그 밖에 사암질 석재로 벽체를 쌓았다. 바닥에서 170cm 높이까지는 한 변의 길이 115cm되는 사각형의 벽을 쌓고, 벽 위부터 265cm 구간까지는 팔각의 벽을 쌓았으며, 그 다음부터 원통형으로 쌓아 마감하였다. 벽체는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그 두께가 50cm인데 석재들이 서로 맞물리도록 견고하게 쌓았다. 우물의 깊이는 현재 7.5m인데 우물의 윗부분이 허물어진 것과 지금의 지표에서 1.5m 내려가서 우물의 축석상태가 드러난 모습을 고려한다면 원래는 9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 안에서 고구려의 도기, 기와, 벽돌, 마구, 숫돌 등이 나왔다. 이 가운데 기와와 벽돌은 대성산성 및 안학궁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우물을 쌓은 연대가 대체로 대성산성과 안학궁의 축조 시기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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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동우물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01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