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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중원 봉황리마애불상군

中原 鳳凰里磨崖佛像群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산 27
  • 시대
    고구려
  • 유형
    불상
입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의 햇골산 중턱의 비탈진 바위면에 있다.
유적개관
1978년에 발견되었는데, 마애반가상, 불상, 보살, 공양상 등 8구가 표현된 마애불상군과 50m가량 떨어진 마애불좌상이 배치되어 있다. 마애불상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고식의 전통과 함께 새로운 양식도 보이고 있어 7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중원은 신라의 영역이긴 하나, 고구려적인 조형성을 느낄 수 있다.
참고문헌
「남한의 고구려유적」, 2006
해설
봉황리 햇골산 약 30m 중턱에서 남한강의 지류인 한포천을 내려다보는 두 개의 바위 절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 불상군이다. 앞쪽 바위에 8구의 불상이 조각되어있고, 이웃한 뒤편 바위 절벽에 1구의 불상이 조각되어 총 9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부처 바위’라고 불려왔으나 1978년 학계에 처음 보고되어 조사되었다. 1982년 12월 1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3월 3일 대한민국 보물 제1401호 ‘봉황리 마애불상군’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현재 공식명칭은 ‘충주 중앙탑면 봉황리 마애불상군’ 이다. 충주시가 2011년과 2014년, 중원탑 혹은 중앙탑이라 불리던 국보 6호 탑평리 7층 석탑을 충주 중앙탑이라 개칭하고, 행정구역도 가금면에서 중앙탑면으로 바꾸면서 일대의 유적과 학교 명칭 등도 함께 개칭한 결과이다.
앞쪽 혹은 아래쪽 암벽에는 높이 1.7m, 폭 5m에 모두 8구의 불상을 새겼는데, 학자에 따라서 불상의 종을 다르게 파악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여래불과 미륵불을 배치하고 주변에 공양상과 보살상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부는 대체로 새김이 깊어 윤곽이 또렷하게 보이지만 하부로 갈수록 마모와 훼손이 심한 편이다.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불상으로는 보기 드문 형식을 띄고 있고, 앞쪽 불상군의 팽이모양의 대좌(臺座)와 갸름한 얼굴 형식은 고구려 불상 양식을 따른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조영된 시기 역시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마애불상 중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뒤편 여래좌상은 높이 3.5m, 폭 8m의 바위에 반가부좌를 튼 상태로 머리 주변에 머리보다 작은 크기로 5구의 불상을 두광처럼 배치하였다. 무릎 밑쪽으로는 훼손이 심하지만 연꽃 문양의 좌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여래좌상의 상체가 짧고, 얼굴과 몸통이 4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조영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앞, 뒤 불상들의 전체적인 조형을 보았을 때 여래상의 신체 표현이나, 손 모양, 두꺼운 옷주름, 공양상의 허리띠 표현 등은 삼국 모두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물론 고구려 양식의 독특한 표현이 없지는 않지만, ‘고구려 불상’이라고 특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불상군이 있는 햇골산은 남한강과 매우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충주를 거쳐 낙동강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여주를 거쳐 서울로 이르는 교통로 상에 위치해 있다. 또 불상군 주위에서 기와편과 도자기 편 등이 발견된 것을 통해, 주변에 사찰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남한강을 따라 불교문화가 전파되는 모습과, 삼국 불교의 특색들이 접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단서라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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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봉황리마애불상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7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