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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법륭사/호류지

法隆寺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비조시대/아스카시대(飛鳥時代)
  • 위치
  • 원소장처
    나라현(奈良縣) 이코마군(生駒郡) 이카루가정(斑鳩町) 호류지야마(法隆寺山)
  • 시대
    고구려
  • 유형
    사찰
유적개관
나라시대의 7대 사찰 중 하나로, 스이코 왕의 아들 쇼토쿠[聖德] 태자가 601~607년에 세웠다고 하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목조건물이다. 화재로 인해 670년 불탔고, 708년 전후에 재건축되었다. 호류사에는 대보장전에 백제관음상(2.1m)이 보존되어 있으며, 금당 내부 벽화는 610년 고구려인인 담징이 그린 것이다. 벽화는 화재로 인해 일부 소실되었다. 전시관을 따로 갖추어놓고 있다.
해설
일본 성덕종(聖德宗)의 총본산으로 이카루데라(斑鳩寺)라고도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로, “법륭사 지역의 불교건축 일괄 유적”이 1993년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에 불교를 중흥시킨 성덕태자[쇼토쿠 태자(聖德太子, 厩戸王)]가 607년 창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창건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고, 재건 기록은 의문이 많은데다가, 쇼토쿠 태자라는 인물 자체가 허구일 가능성까지 제기되기 때문이다. 다만 현존 호류지가 적어도 7세기 말-8세기 초엽 완성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또 발굴조사 결과 현재 건물 이전에도 같은 자리에 사원이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경내에는 몽전[유메도노(夢殿)]이 있는 동원(東院)과 중문, 오층 목탑, 금당(金堂) 등이 위치한 서원(西院) 권역으로 구분된다. 서원이 먼저 건축되고 천평[덴표(天平)] 10년(738)경 동원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호류지는 670년(“夏四月癸卯朔壬申 夜半之後 災法隆寺 一屋無餘” 『일본서기』27권)과 925년에 대화재를 겪는 등 수차례 증수(增修)와 복원을 반복하였으나 건물과 유물들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전되었다.
호류지와 소장 유물들은 1934년부터 1985년까지 대대적인 복원작업이 진행될 정도로 일본인의 자부심이자 일본의 상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호류지와 그 유물들이 한국의 고대 삼국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 주목된다. 먼저 서원의 5층 목탑은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유형이 유사하다. 때문에 한국학자들은 백제 기술자들에 의해서 건축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몽전과 금당에 안치되어있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국보로 일컬어지는 백제관음상[구다라관음상(百濟觀音像)]과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 역시 백제에서 제작되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또 금당에는 동양3대 불교 미술품으로 인정받은 사불정토도(四佛淨土圖)가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이 호류지에 머물면서 그린 것으로 일반화되어 있으나, 일본 학계에서는 고구려 승려 담징에 대한 기록이 불분명 할 뿐만 아니라, 인도, 혹은 당(唐)의 화풍으로 다수의 인물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파악되는 점을 들어, 7세기 후반 백봉시대[하쿠호시대(白鳳時代)]에 일본인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벽화는 1949년 수리 중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여러 이견들이 있으나, 호류지와 백제, 고구려와의 관련성은 부정할 수 없으며, 고대 한반도의 국가들과 일본과의 교섭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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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륭사/호류지 자료번호 : isea.d_0002_0020_003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