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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조전촌고분군

趙甸墓群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미상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시 본계만족자치현 청하성진 조전자촌(遼寧省 本溪市 本溪滿族自治현縣 淸河城鎭 趙甸子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본계현 청하성진 조전자촌 서북쪽에 위치
유적개관
1988년에 발굴조사 되었는데, 1,500㎡에 석실분이 분포한다. 석실이 지상에 위치하고 묘 바닥에 대형 석판을 깔고 잔돌로 벽을 조성하여, 큰 돌로 덮고 화장한 것과 묘실이 지하에 위치하며 석축으로 덮은 것이 존재한다.
유물개관
청동 이배, 토기편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본계만족자치현 현소재지(縣所在地)인 소시진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거리에 위치한 청하성진 조전자촌 서북쪽에서 발견된 무덤군이다.
1987년 관음각(觀音閣) 댐 공사로 인한 수몰지역내 문물조사를 실시하면서 청하성진에서 고분군을 발견하고 1988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약 1,500m² 면적에서 수 기의 석실묘들이 확인되었다. 고분의 훼손이 심하여 돌무지와 봉분, 무덤의 구분이 어려웠고 내부 유형이 밝혀진 무덤은 2기였다. 두 무덤은 유형이 서로 다른데, 한 기는 묘실이 지상에 위치하고 묘실 바닥에는 대형 판석을 깔았고 묘실의 벽은 얕게 쌓아올렸다. 다른 무덤은 묘실을 지하에 위치시켰다.
무덤의 크기는 2m×1m로 소형 무덤이다. 돌화살촉과 토기파편 일부가 출토되었고 첫 번째 무덤에서는 화장하여 매장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두 고분의 유형은 약간 다르지만 같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고구려 주민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하성진은 소시진에서 25km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기는 하지만 현재 관음각댐으로 인한 관음각호(觀音閣湖)가 생성되어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수몰되기 이전에는 수로를 따라 이동이 용이하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기원전 38년 무렵 주몽이 환인(桓仁) 일대에서 고구려를 개국한 이후부터 줄곧, 고구려는 요동의 진출을 두고 중국 세력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다.
고구려가 요하 유역까지 진출한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385년에 고국양왕(故國壤王)이 현도군과 요동군을 함락한 바가 있으나 이는 5개월에 그친 일시적인 일이고, 대체로 광개토왕대에 들어 402년 숙군성 공격, 404년 요서 공격 등을 통해 고구려의 요하 유역진출이 가능해 진 것으로 파악된다. 또 본계 지역에 고구려 유적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고구려가 요동으로 진출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계는 고구려의 요동진출의 첫 교두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요동 진출로는, 반대로 중국세력의 침입로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찍부터 고구려는 요동에서 국도(國都)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에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이 지역의 유적들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조전고분군은 404년 고구려의 요동 점유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되었다고 보이며, 고구려의 요동진출 및 지역지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인근 부가루촌(富家樓村), 단산자촌(團山子村) 등지에서 고구려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군이 함께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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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촌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3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