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변우산성

邊牛山城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시 석교자향 변우촌(中國 遼寧省 本溪市 石橋子鄕 邊牛村/中國 遼寧省 本溪市 溪湖區 邊牛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1,235m
입지
본계시 계호구 왜두산진 변우촌 동쪽 200m 산에 위치
유적개관
성 둘레가 1,235m인 산성으로, 3개의 문지가 있는데, 폭은 대략 8.5m가량이다. 서문은 옹성문이다. 성벽은 토축이며, 잔고는 12m, 기저부 폭은 20m이며, 판축의 두께는 10cm 내외이다. 성 동북과 동남에는 각루가 있으며, 서벽 바깥쪽으로는 토벽이 하나 더 있다.
유물개관
* 고구려 토기편, 요금 기와편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변우산성 혹은 동산산성(東山山城)이라고 부른다. 본계시의 북쪽 20여 km 떨어진 계호구(溪湖區) 변우촌 변우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해발 100-200m 전후인 주봉에서 내리 뻗은 산줄기에 성곽을 쌓았다. 수차례 조사가 있었으나 성곽에 대한 정보는 분명하지 않다.
성벽을 흙으로만 쌓았다는 보고서도 있으나, 북벽과 남벽에서 돌을 쌓고 흙을 다져 성벽을 쌓은 토석혼축 흔적이 조사되었다(국내학자의 답사에 의하면 토석혼축이라기 보다는 성돌을 쌓고 흙을 덮은 방식으로 확인하였다.). 성곽의 규모에 대해서도 둘레를 1,141m, 1,235m, 1,500m, 5,500m로 각각 다르게 보고하고 있다.
산성 내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장대와 각대(角臺), 건물지, 그리고 우물과 저수지, 배수구 등이 확인 되었다. 서쪽과 북쪽 방면에서 문터가 확인되었고, 방어시설인 치(雉)도 확인되었다. 성곽의 조영방식이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해 볼 때 고구려 산성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변우산성이 위치한 지역은 요동평원이 끝나고 동쪽으로 험준한 산악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지역이다. 특히 요녕성의 성도인 심양(瀋陽)에서 압록강 일대로 나아가는 길목에 해당한다. 현재도 심양-단동(丹東)간 고속도로, 철도, 일반 국로 등이 지나는 교통 중심지이며, 변우산성의 인근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지하듯이 기원전 38년 무렵 부여(夫餘)로부터 나온 주몽이라는 인물이 환인 일대에서 고구려를 개국하였는데, 고구려는 요동의 진출을 두고 중국 세력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요동 진출의 교두보 중 하나가 본계 지역이었다.
고구려가 요하 유역까지 진출한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385년에 고국양왕(故國壤王)이 현도군과 요동군을 함락한 바가 있으나, 이는 5개월간에 그친 것이고, 광개토왕대에 들어 402년 숙군성 공격, 404년 요서 공격 등을 통해 이 무렵 고구려의 요동진출이 가능해 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한편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요동방면으로부터 진입하는 적에 대한 방어에 힘을 쏟았다. 중요 요충지와 산곡지간에 많은 방어시설과 차단시설을 쌓아서 적의 진군을 막았고, 이 성들을 중심으로 지방 지배를 위한 거점으로 삼았다.
변우산성 역시 요동평원에서 압록강 방향, 고구려의 수도로 진격하는 적을 막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진 군사시설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중형급 산성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성 내부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이어서 지방 지배를 위한 거점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학계에서는 마미성(磨米城), 려산성(黎山城), 가시성(加尸城) 등으로 비정하고 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변우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