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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원가보고분군

阮家堡墓群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
  • 원소장처
    요녕성 단동시 봉성시 석성진 맹가촌 맹가(中國 遼寧省 丹東市 鳳城市 石城鎭 孟家村 孟家)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봉성시 석성진 맹가촌 원가보 동북쪽에 위치
유적개관
4,000㎡에 4기의 석실묘를 조사하였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유물개관
토기, 석촉 등
참고문헌
「博物館硏究」1991-2
해설
단동시 중심에서 북쪽 약 80km, 봉성시 중심에서 동북 약 40km, 관전만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 현(縣)중심에서는 서쪽 약 34km 거리에 위치한 맹가촌 맹가에서 발견된 고분군이다. 보고에 의하면 맹가촌 완가보((阮家堡) 북쪽에 위치하여 ‘완가보고분군’으로도 부른다고 하였으나, 2016년 현재 완가보라는 지역명은 쓰지 않는다. 또 1982년 조사 당시, 고분의 명칭을 ‘맹가 몇 호분’으로 편호하였기 때문에 ‘맹가고분군’으로 명명하는 것이 옳다.
맹가촌은 애하(靉河)가 감싸 돌며 황해(黃海)쪽으로 흐르는 만곡지점에 위치하는데, 현재 만곡지점의 북쪽과 남쪽에는 갑문을 설치하면서 지역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1982년 요녕 일대 문물조사에서 호가보고분군(胡家堡古墳群)과 함께 발견 보고되었다. 맹가에서는 30여기의 고분이 발견되었는데, 지역주민의 전언에 따르면 과거에는 수 백기에 이르는 무덤이 있었으나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다고 하였다. 1989년 현지답사 시기에는 훼손이 더욱 심화되어 8기의 고분만이 확인되었는데, 이 중 상태가 양호한 4기의 고분에 대한 정리조사만 보고되었다.
고분의 최소 분포 범위는 4,000㎡에 달하고, 고분의 축조방법이나 형식은 서남쪽 17km 거리에 있는 호가보고분군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두 고분군은 모두 고분의 축조 방법과 역사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고구려의 고분으로 인정된다.
또 두 고분군 모두 지표면에 돌을 쌓아 묘실을 축조하고 두꺼운 덮개돌로 천장을 만들었으며, 외부에는 돌들을 쌓아올린 적석총 이었다. 일부 무덤은 외부에 적석을 한 이후에 흙으로 덮은 봉토묘의 형식으로도 보이는데, 이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맹가촌고분군에서는 호가보고분군과는 약간 다른 차이점이 보이는데, 쌓아올린 돌들이 비교적 크다는 점과, 묘실 안에 대형 판석을 세워 벽을 세웠다는 점이다. 보고에서는 그 형태가 마치 석붕(石棚), 즉 고인돌과 같다고 하였다.
일부 연구자는 집안(集安)의 장군총(將軍塚)의 배총(陪冢)과 같은 형태로 보아 맹가촌고분군의 조성시기를 장군총의 연대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맹가촌고분군의 무덤양식은 석붕형 묘실 외부에 돌을 쌓은 전형적인 적석총 양식을 따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이와 같은 형태는 매우 드문 예로 고구려 고분 형태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출토된 유물은 고구려계 토기편 외에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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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보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70_003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