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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만달산 고분군 조사

만달산 고분군(晩達山古墳群)

만달산(晩達山) 고분군은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승호읍리 만달산 일대에 위치하는 유적으로 오노다[小野田] 시멘트주식회사의 공장 확장공사로 인해 1917년 3월 세키노 다다시와 야쓰이 세이치[谷井濟一] 등이 조사를 실시하였고, 1927년과 1937년 노모리 겐[野守健] 일행이 추가 조사한 유적이다.
1937년에는 노모리 겐과 다쿠보, 가야모토 등이 조사를 담당 했다.
고분은 만달산 남서 산록의 완만한 경사면에 군집해 있는데 동쪽으로는 1~4호분이 서쪽으로는 15~17호분이 위치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점점이 이들 사이에 분포한다.
이하 약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해 둔다.
고분의 대부분은 석실분에 해당하며, 이 중 1호, 3호, 18호가 적석분으로 보고되어 있으나, 18호는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한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석실분에는 2기의 석실(石室)이 존재하는 것도 있는데 5호분, 7호분, 8호분이 이에 해당하며 이들은 모두 동일 봉토 내에 동서로 두 개의 석실을 가진다.
만달산 고분군 위치도
만달산 고분군 배치도
만달산 고분군 전경
또한 2호분을 제외한 고분들은 천장부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내부의 교란상태로 보아 도굴로 인해 파괴된 것이다. 고분 내부의 벽은 주로 석회암 할석을 불규칙적으로 쌓아 올려 사각형, 직사각형 또는 사다리형(梯形)을 나타내고 있으며, 벽면에는 회를 칠한 흔적이 확인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4호분, 9호분, 10호분에는 벽면에 석회로 미장한 흔적이 잘 남아 있으며, 5호분의 동실(東室)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바닥은 크게 지면을 다져서 만든 것과 회를 바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관대는 바닥보다 한 단을 높게 해서 할석을 평평하게 깔거나 납작한 판석을 3·4겹으로 쌓고 석회를 바른 것이 대부분으로 위치는 서쪽 벽에 치우쳐져 양 끝단이 남벽과 북벽에 닿도록 만들어졌다. 연도는 대부분이 현실 남벽 동쪽에 위치하여 남쪽 혹은 남서, 남동을 향해 조성되었으며 출토유물은 대부분이 도굴되어 확인된 유물은 소량에 지나지 않지만, 인골은 대부분의 고분에서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각 고분들의 특징을 개별 고분별로 약보고서를 토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호분은 길이 10.61m, 높이 약 1.51m으로 기부(基部)가 방형이고, 할석을 계단 모양으로 쌓아 올린 방대형의 적석 고분이다. 구체적으로 내부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한 정보가 없지만 이 고분은 1917년도에 야쓰이 세이치가 조사한 것이다.
2호분은 길이가 약 15.15m, 높이가 약 4.55m로 파괴상태가 심하여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방형분(方形墳)으로 생각된다. 유일하게 천장부가 확인되는 횡구식석실로서 현실의 북벽은 2.3m, 서벽은 2.72m이며, 높이는 3.1m로 관대(棺臺)는 서쪽에 설치하였다. 연도의 길이는 84.8cm, 높이는 1.8m으로 현실 남벽 동쪽에 위치하며 남쪽을 향해 조성되었으며, 출토유물로는 쇠못이 있다.
3호분은 길이 약 16.96m, 높이 약 1.97m로 확실하진 않지만 1호분과 같은 방대형의 적석고분으로 생각되며, 출토된 유물은 없다. 1927년 노로리 겐이 조사한 고분이다.
4호분은 동서 약 11.66m척, 높이가 약 1.97mm척인 반구형의 원분(圓墳)으로 생각되나, 분정부(墳頂部)가 도굴로 인해 파괴되어 명확하지 않다. 관대는 동서로 구분되어 각각 설치되었고, 문 설비를 한 것이 특징이다. 연도는 남벽 동쪽에 설치하였으며, 남동을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이 1체분 발견되었을 뿐이다.
만달산 4호분 분구 측량도와 석실의 위치(노모리 겐 작도)
만달산 4호분 매장주체부 실측도(노모리 겐 작도)
만달산 4호분 분구 외형
만달산 4호분 연도에서 현실을 바라 본 모습
5호분 동석실(東石室)은 동서 약 9.69m, 높이가 약 1.36m인 원분으로 분정부에는 천장재(天障材)로 생각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쌓여 있었다. 현실의 북벽은 1.47m, 서벽이 2.4m, 높이가 1.35m로 관대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벽에는 회칠한 흔적이 확인된다. 바닥은 적색점토를 다져서 만들었고, 연도는 길이 89.4cm, 중앙 폭 85.45cm로 남벽의 동쪽에 설치하였으며, 남동을 향해 조영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2체분(體分)과 동환, 쇠못이 확인되었다. 서석실(西石室) 현실의 북벽은 1.32m, 서벽은 1.7m으로 높이는 81.81m이다. 현실 서쪽에 관대를 설치하였고, 연도는 길이 69.1cm, 입구 폭 63.63cm으로 남벽 동쪽에 설치하였으며, 남동쪽을 향해 조영되었다. 출토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인골이 1체분(體分) 확인되었다.
6호분은 동서 약 6.51m, 높이가 약 1.21m인 원분으로 공사로 인해 일부 파괴되었으며, 도굴된 흔적이 관찰된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1체분과 쇠못이 있다.
7호분 서석실(西石室)은 동서 약 10.45m, 높이가 약 1.21m인 원분으로 분정부에는 천장재로 생각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쌓여 있고, 봉토의 남쪽 부분은 공사로 인해 일부 파괴되었다. 현실 북벽은 1.63m, 서벽은 2.2m, 높이는 1.42m이며, 관대는 서벽에 접해서 설치되었다. 연도는 길이 1.28m, 중앙 폭 81.51cm로 남벽의 동쪽에 설치하였으며, 남동쪽을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2체분(體分)과 금제이식, 토기가 있다. 동석실(東石室)의 현실 북벽 길이는 1.74m, 서벽 2.23m, 높이 22.57m으로 관대는 서벽에 접해서 설치되었다. 연도는 길이 1.51m, 중앙 폭 90cm로 동쪽에 치우쳐 남동쪽을 향해 설치되었다. 확인된 출토유물은 없으며, 인골 1체분이 출토되었다.
만달산 7호분 실측도(노모리 겐 작도)
만달산 7호분 서석실 실측도(노모리 겐 작도)
만달산 7호분 동석실 실측도(노모리 겐 작도)
만달산 7호분 분구 외형
만달산 7호분 동석실 내부
만달산 7호분 석실 내 인골
만달산 7호분 서석실 출토 고구려
만달산 7호분 금제 이식
8호분 서석실(西石室)은 동서 약 9.45m, 높이 약 90.9cm인 원분으로 분정부에는 천장재로 생각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있다. 현실의 북벽은 1.67m, 서벽은 2.43m, 높이는 72.72cm으로 서벽에 관대를 설치하였다. 연도는 길이 54.5cm, 입구 폭 86.4m로 동쪽에 치우쳐 설치되었으며, 남쪽을 향해 조영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2체분과 쇠거울이 있다. 동석실의 현실 북벽은 1.51m, 동벽은 2.27m, 높이 1.12m로 관대는 설치하지 않았고, 바닥에 회칠한 흔적이 있다. 연도는 길이 1.24m, 입구 폭 81.81cm으로 다른 분들의 연도가 동쪽에 치우쳐 있는 것에 반해 8호 동석실(東石室)의 연도는 서쪽에 치우쳐서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1체분(體分)과 금장 청동환, 철촉이 있으며, 쇠못도 다량 출토되었다.
9호분은 남북 약 7.88m, 높이가 약 1.21m의 원분으로, 분정부에는 천장재로 생각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쌓여 있었다. 현실의 북벽은 1.51m, 서벽은 2.23m, 높이는 94cm으로 관대는 설치되어 있지 않고, 바닥에는 회칠을 하였다. 연도는 길이 1.7m, 중앙 폭 70cm으로 동쪽에 치우쳐 남서를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1체분과 쇠못이 다량 확인되었다.
10호분은 남북 약 6.36m, 높이가 약 1.21m인 원분으로 공사로 인해 봉토의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현실 북벽이 1.41m, 서벽이 2.24m, 높이가 1.57m로 관대는 설치하지 않았으며, 바닥에는 회칠을 하였다. 연도는 길이 2.1m, 폭 75.76cm으로 동쪽에 치우쳐 남서를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1체분과 쇠못이 있다. 석실도면은 다쿠보 신고가 작성했다.
만달산 10호분 분구측량도(다쿠보 신고 작도)
만달산 10호분 실측도(다쿠보 신고 작도)
만달산 10호분 분구 외형
만달산 10호분 연도
만달산 10호분 현실 내부
11호분은 남북 약 3.03m, 높이가 약 60.6cm인 원분으로 역시 공사로 인해 봉토의 일부가 파괴되었다. 현실의 북벽은 1.46m, 서벽은 1.7m, 높이는 63.64cm로 관대는 서벽에 붙여서 설치했다. 연도는 길이 51m, 폭 57cm로 동쪽에 치우쳐 만들어 졌다. 출토유물은 인골 1체분(體分)이 전부이다. 12호분은 남북 약 6.51cm, 높이는 1.12m인 원분으로 분정부에는 석재가 노출되어 있으며, 봉토의 남동(南東)부분은 공사로 인해 일부 파괴되었다. 현실의 북벽은 1.68m, 서벽이 2.53m, 높이가 1.08m로 관대는 서벽에 접한다. 연도는 길이 1.8m, 폭이 83.3cm이며, 동쪽에 치우쳐 남서를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은 인골 1체분 이 전부이다.
13호분은 남북 약 7.72m, 높이가 약 1.21m인 원분이다. 분정부에는 석재가 노출되어 있고, 봉토의 남동부분은 공사로 인해 일부 파괴되었다. 현실의 북벽은 1.63m, 서벽은 2.5m, 높이가 1.4m로 관대는 서벽을 접해서 설치하였다. 다만 다른 고분들이 관대의 끝을 남북벽에 잇닿게 만든 반면 13호분은 남북벽에 닿지 않게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연도는 길이 2.3m, 중앙 폭 97cm으로 동쪽으로 치우쳐 남서를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1체분(體分)과 쇠못이 있다.
만달산 13호분 분구측량도(다쿠보 신고 작도)
만달산 13호분 석실 실측도(다쿠보 신고 작도
만달산 13호분 분구 외형
만달산 13호분 현실 내부
14호분은 동서로 약 7m, 높이는 약 1.51m인 원분으로 분정부에는 할석 등이 노출되어 있었으며, 봉토는 공사로 인해 남쪽 일부분이 파괴되었다. 현실의 북벽은 1.9m, 서벽이 2.7m, 높이가 1.25m으로 관대는 설치하지 않았으며, 바닥에 회칠을 하였다. 연도는 길이 2.3m, 중앙 폭 83.3cm으로 동쪽으로 치우쳐 남서를 향해 조성되었으며, 출토유물은 인골 2체분(體分)과 목관편, 쇠못, 토기가 전부이다.
15호분은 동서 약 8.03m, 높이 1.21m인 원분으로 공사로 인해 남반(南半)이 파괴되었다. 현실의 북벽은 1.3m, 서벽은 2.13m, 높이는 72cm로 관대는 서벽을 접해서 설치하였으며, 바닥에는 두꺼운 칠을 하였다. 연도는 길이 76.4cm, 중앙 폭 72cm로 동쪽에 치우쳐 남쪽을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2체분(體分)과 오수전, 토기편, 청동완환(靑銅腕鐶)이 확인되었다.
16호분은 남북 약 4.85m, 높이 약 91cm인 원분으로 분정부에는 크고 작은 할석재가 노출되어 있다. 현실의 북벽은 1.68m, 서벽은 2.33m, 높이는 1.58m로 관대는 서벽에 접해서 설치하였고, 바닥에는 칠을 하였다. 연도의 길이는 1.57m, 입구 폭은 83.3cm로 동쪽에 치우쳐 설치하였고, 남서를 향해 조성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 1체분(體分)과 쇠못, 철금구 잔편이 확인되었다.
17호분은 남북 약 7.99m, 높이가 약 91cm인 원분으로 현실 북벽은 1.36m, 서벽은 2.06m, 높이는 1.09m로 내부에 관대는 설치하지 않았다. 연도의 길이는 1.6m, 입구 폭은 77.2cm로 동쪽에 치우쳐 남동을 향해 조성되었으며, 바닥은 할석을 편평하게 겹쳐 쌓아 만들었다. 출토유물로는 인골이 있다. 18호분은 미조사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석재가 쌓인 모습으로 보아 적석분으로 생각된다.
보고자는 현실 내에 관정만 확인되는 예, 관대와 관정 모두 확인되는 예, 그리고 관대만 확인되는 예, 관대와 관정 모두 확인되지 않는 예를 통해 목관 사용의 유무 또는 목관의 관정 사용유무에 대해 상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7호 서실(西室)과 14호에서 확인된 토기를 통해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고구려 후기 토기의 특징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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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산 고분군 조사 자료번호 : ku.d_0003_0040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