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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대현산성

大峴山城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조선
  • 위치
  • 원소장처
    황해북도 서흥군 고성리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황해북도 서흥군 고성리에 위치한다. 북쪽에 있는 대현산(해발 607m)의 장대봉을 기점으로 남쪽 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를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성 안쪽에 5개의 계곡을 끼고 있어 오곡성으로 비정되어 왔다.
유적개관
둘레가 약 7km에 달하는 대형 산성으로, 석축 산성이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조선 시대 선조 30년(1597)에 고쳐 쌓았다고 한다. 성문은 남,동,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남문의 경우 너비는 약 2.5m이고 문길 양쪽에는 돌확이 놓여있었다. 장대는 동,서,남,북 4면에 모두 설치하였는데, 그 가운데 북장대가 가장 높고 관측이 용이하다. 성 내부에는 건물지와 연못이 확인되었다. 남문 부근에는 고구려 시기의 기와편들이 다수 발견된다. 고구려시기부터 조선시기까지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학계는 광개토왕이 쌓은 국남7성 중 하나로 여긴다.
출토유물
* 기와
참고문헌
「조선유적유물도감」3-고구려편1, 1989
해설
황해북도 서흥군 고성리의 북쪽에 있는 대현산(해발 607m)의 장대봉을 기점으로 남쪽 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를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성 안쪽에 5개의 계곡을 끼고 있어 오곡성으로 비정되어 왔다.
둘레가 약 7km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서흥읍지』의 크기와 대략 비슷하다. 성벽은 외면축조방식을 주로 하고 일부는 양면축조방식을 선택하였다. 남쪽 성벽은 제일 낮은 지대를 지나는데, 대현폭포 위에서 가로질러 간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조선 시대 선조 30년(1597)에 고쳐 쌓았다고 한다.
성문은 동, 남,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대현폭포 서쪽 비탈에 있는 남문의 경우 너비는 약 2.5m이고 문길 양쪽에는 돌확이 놓여있었다. 이 문이 성의 정문으로 앞쪽에는 성벽이 또 있다. 수구문은 따로 없고 폭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장대는 4면에 모두 설치하였는데, 그 가운데 북장대가 가장 높고 관측이 용이하다.
성 내부에는 건물지와 연못이 확인되었는데 남문 부근에는 고구려 시기의 회색과 적색 기와편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고구려시기부터 조선시기까지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 산성 주변에는 고구려의 무덤들이 있다고 전한다. 북한학계는 광개토왕이 쌓은 국남7성 중 하나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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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70_004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