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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진파리고분군

眞坡里古墳群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역포구역 용산리 왕릉동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평양직할시 역포구역 용산리(구 무진리) 왕릉동(구 진파동)에 위치해 있다. 평양 중심부로부터 동남쪽으로 22km 떨어진 낙랑준평원의 동남편에 위치해 있는데, 능선 앞쪽에 위치한 전 동명왕릉을 주분으로 하여 배후에 석실봉토분 10여 기가 분포한다. 그리고 서쪽으로 200m 떨어져 석실봉토분 2기와 350m 떨어진 구릉 말단부에 규모가 작은 적석총 6기가 분포하고, 동쪽으로 작은 골짜기 건너 550m 떨어져 석실봉토분으로 이루어진 설매동 고분군이 분포한다.
유적개관
1941년에 발굴된 1,4,6,7,9호분과 전 동명왕릉 및 기타 고분 등이 1974년에 발굴조사 되었다. 전 동명왕릉을 제외한 진파리고분군의 석실봉토분 11기는 봉분이 대부분 유실되었고, 3기는 내부구조 일부만 남아있었다. 내부 구조는 16호분만 동시축조된 쌍실이고, 나머지는 모두 연도와 현실로 구성된 단실묘이다. 벽화분으로 유명한 것은 1호, 9호분이고, 16호분은 흔적만 남아있다. 동명왕릉을 포함하면 전체 벽화분은 4기이다. 진파리 고분군은 전 동명왕릉과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천장 높이는 점차 낮아지고, 구조 양식은 전 동명왕릉의 절천장식에서 점차 말각천 장식으로 변화한다.
출토유물
* 금동투조장식판(7호분)
참고문헌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유적」, 1976
해설
평양의 동남쪽 20km 거리에 위치한 제령산의 서쪽 구릉 사면에 있는 동명왕릉의 배후에 있다. 현재 1호부터 9호까지 총 9기의 고분이 복원되어 있다. 제일 위에 1호분이 있고 그 아래에 2, 3호분이 있으며 그 남쪽에 4, 5, 6호분이 일렬로 있다. 동남쪽 능선의 사면에 7, 8, 9호분이 있다. 그리고 1호분과 2호분 사이에 석실 바닥만 남아 있는 16호분이 확인된다.
북한은 이들 고분의 주인을 비정하고 있는데 1호분은 온달과 평강공주, 2호분은 승우, 3호분은 예실불, 4호분은 마리, 5호분은 오이, 6호분은 부분노, 7호분은 고승, 8호분은 이문진, 9호분은 고흘이다. 벽화분은 진파리 1호분(동명왕릉 9호분), 진파리 4호분(동명왕릉 1호분), 16호분에서 확인되었으나 16호분은 흔적만 확인된다.
이 가운데 1호분은 동명왕릉 다음으로 가장 큰 석실봉토벽화분으로 널방[현실(玄室)]과 널길[연도(羨道)]로 이루어진 단실묘이다. 분구는 너비 30m, 높이 7m 정도이다. 널방[현실(玄室)]은 남북이 긴 장방형으로 남북 3.4m, 동서 2.5m, 높이 2.54m이고 삼각고임천장이다. 널길[연도(羨道)]는 널방[현실(玄室)] 남벽 중앙에 위치하며 길이 3.5m, 너비 1.5m, 높이 1.82m이다. 널길[연도(羨道)] 바닥과 벽, 천장에 회(灰)를 칠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차츰 낮아진다.
무덤 안에는 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는데 주제는 사신이다. 무덤 안길의 동서 양 벽에는 연화대좌(蓮花臺座)를 밟고 창을 든 인물상이 그려졌고, 널방의 각 네 벽에는 사신과 함께 구름과 인동 연꽃이 그려져 있다. 동서의 청룡과 백호가 일반적인 남향과 달리 북향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천장의 삼각고임에는 연꽃과, 인동, 구름이 장식되어 있고 중앙에는 해와 달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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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파리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03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