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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봉강사를 세움

11월 기해삭(1일)에 황태자는 모든 대부들에게 “나에게는 존귀한 불상이 있다. 누가 이 불상을 가져가 예배하지 않겠는가.”라고 물었다. 이때 진조하승(秦造河勝;하타노미야쓰코카와카쓰)주 001
번역주 001)
秦氏에 대해서는 『日本書紀』 응신천황 14년(214) 이 해조에 보이는데, 백제에서 120현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귀화한 弓月君을 조상으로 하는 설이 있다. 『新撰姓氏録』에는 秦나라 始皇帝의 후예라는 설도 있지만, 대체로 신라계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秦氏의 본거지는 山背國 葛野郡 太秦(지금의 京都市 右京區 부근)로 보고 있는데, 河内國 讃良郡 太秦에도 같은 지명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지금의 広隆寺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天武천황 14년(685)의 ‘八色姓’ 때에는 忌寸姓을 수여받았지만, 公과 宿禰 등을 칭하는 가계도 있었다고 한다. 平安천도와 조성에서는 秦氏의 재력과 기술력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同 18년 10월조와 皇極紀 3년 7월조에 관련기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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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와서 “제가 예배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즉시 불상을 받았다. 그리고 봉강사(蜂岡寺;하치오카데라)주 002
번역주 002)
‘廣隆寺, 太秦寺’라고도 하며, 창건을 推古 30년으로 보는 설이 있고, 31년 7월조에 신라에서 가져온 불상을 ‘葛野의 秦寺’에 안치하였다는 기사도 보이고 있다. 지금은 京都市右京區 太秦 蜂岡町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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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세웠다.

  • 번역주 001)
    秦氏에 대해서는 『日本書紀』 응신천황 14년(214) 이 해조에 보이는데, 백제에서 120현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귀화한 弓月君을 조상으로 하는 설이 있다. 『新撰姓氏録』에는 秦나라 始皇帝의 후예라는 설도 있지만, 대체로 신라계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秦氏의 본거지는 山背國 葛野郡 太秦(지금의 京都市 右京區 부근)로 보고 있는데, 河内國 讃良郡 太秦에도 같은 지명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지금의 広隆寺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天武천황 14년(685)의 ‘八色姓’ 때에는 忌寸姓을 수여받았지만, 公과 宿禰 등을 칭하는 가계도 있었다고 한다. 平安천도와 조성에서는 秦氏의 재력과 기술력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同 18년 10월조와 皇極紀 3년 7월조에 관련기사가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廣隆寺, 太秦寺’라고도 하며, 창건을 推古 30년으로 보는 설이 있고, 31년 7월조에 신라에서 가져온 불상을 ‘葛野의 秦寺’에 안치하였다는 기사도 보이고 있다. 지금은 京都市右京區 太秦 蜂岡町에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진조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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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사를 세움 자료번호 : ns.k_0036_0120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