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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남성자고성

南城子古城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吉林省 楡樹市 劉家鎭 合心村 南城子屯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둘레: 900m, 남: 300m, 북: 300m, 동: 150m, 서: 150m
입지
제2송화강이 성 서쪽을 남에서 북쪽으로 굽이굽이 흘러간다. 고성은 강면(江面)과 약 60여미터 떨어져 있으며, 성의 소재지는 지세가 평탄하다. 남쪽과 북쪽은 모두 절벽과 도랑(충구(冲沟))에 끼어 있다. 동쪽 성벽에는 마을의 작은 사이길(소로(小路))이 있는데, 마을(둔(屯))에서 고성 안으로 들어가서 북쪽으로 뻗어나간다.
유적개관
성지는 장방형으로 방위는 340도이다. 토축이며, 동북쪽 모서리에 문이 있음
유물개관
베무늬 기와, 푸른색 벽돌, 요나라 시기의 백자, 동전, 니질회도편, 철도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길림성(吉林省) 유수시(楡樹市) 유가진(劉家鎭) 합심촌(合心村) 남성자둔(南城子屯)에서 서쪽으로 0.7㎞ 떨어진 곳에 있는데, 제2송화강(松花江)이 성 서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굽이굽이 흘러가고 성은 강의 수면과 약 60여 m 떨어져 있으며, 성의 소재지는 지세가 평탄하다. 남쪽과 북쪽은 모두 절벽과 도랑에 끼어 있다. 동쪽 성벽에는 마을의 작은 사이길이 있는데, 마을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서 북쪽으로 뻗어나간다.
성은 장방형으로 방위는 340도이고, 둘레는 900m인데 동쪽 성벽과 서쪽 성벽은 모두 150m이며, 남쪽 성벽과 북쪽 성벽은 각각 300m이다. 성 안은 현재 경작지로 개간되었고, 일부는 침식되어 도랑이 되었으며, 성 네 벽은 이미 무너져 동남쪽 모서리의 일부만 남아 있다. 성벽은 흙을 판축(版築)하여 만들었다. 현지인들에 의하면, 마을을 만들 초기에는 성의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아서, 동쪽·남쪽·북쪽의 성벽이 이미 무너져서 훼손되었으나, 남아 있는 벽은 오히려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표에 흩어져 있는 유물로 보면 요(遼)·금(金) 시기(907∼1234)의 문화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서쪽 단층과 도랑 안쪽에서는 서단산문화 유형과 발해 시기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성 안은 현재 지표면에 문물이 많지 않으며, 단지 성 서쪽의 지면에서 약간이 보이며, 흩어져 있는 유물에는 베무늬 기와, 푸른색 벽돌, 요(遼) 시기(907∼1125)의 백자조각, 회색의 고운 뻘질 토기조각이 있다. 1960년대에 성 안에서 철도(鐵刀), 청동 불상, 숭녕통보(崇寧通寶) 등 송(宋) 시기(960∼1279)의 동전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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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자고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80_005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