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대구조(大丘造; 오오카노미야츠코)

대구조(大丘造; 오오카노미야츠코)
 백제국(百濟國) 사람 속고왕(速古王)의 12세손인 은솔(恩率) 고난연자(高難延子)로부터 나왔다.
 
【주석】
1. 대구조(大丘造)
대구(大丘; 오오카)의 씨명은 산성국(山城國) 갈야군(葛野郡) 대강향(大岡鄕)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경도시(京都市) 서경구(西京區) 견원(樫原) 일대이다. 대구(大丘)의 옛 성은 고난(高難)이다.
대구조씨의 일족으로는 『속일본후기』 천장(天長) 10년(833) 5월 정유조에 대구추주(大丘秋主)가 있고,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6년(864) 8월 임술조에 대구조진계(大丘造塵繼)가 대구련전예(大丘連田刈) 등 4인과 함께 숙녜(宿禰) 성을 받았으며 그 선조는 백제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속고왕(速古王)
백제 제13대 근초고왕(346~375)으로 『일본서기』 신공기 46년, 동 49년, 동 55년조에는 초고왕(肖古王)으로, 동 흠명기 2년(541) 4월조에는 속고왕(速古王)으로, 『고사기』 응신천황단에는 조고왕(照古王) 등으로 표기되어 있고, 또 『속일본기』 연력(延曆) 9년(790)7월 신사조에는 근초고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3. 은솔고난연자(恩率高難延子)
은솔은 백제 16계 관위 중에서 제3위이다. 『일본서기』 응신(應神) 16년 시세조에서는 고난(高難)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즉 백제 아화왕(阿花王)이 죽자 응신천황이 직지왕(直支王)을 불러 동한의 땅을 주면서 백제로 가서 왕위를 잇도록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할주(割註)에 “동한은 감라성(甘羅城), 고난성(高難城), 이림성(爾林城)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난성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응신 8년 3월조에 인용된 「백제기(百濟記)」 에 보이는 곡나(谷那)와 같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곡나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보이는 곡성군(谷城郡, 현재 전라남도 곡성)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서기』 천지 2년(663) 9월 정사조에서는 백제 부흥 운동의 거점인 주류성이 함락된 직후 일본 수군과 함께 달솔 곡나진수(谷那晉首)가 왜국으로 망명하고 있다. 곡나와 고난이 같은 씨를 가리킨다면 곡나진수와 고난연자는 동족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속일본기』 신귀(神龜) 원년(724) 5월 신미조에 의하면 종6위하 곡나경수(谷那庚受)가 난파련(難波連)의 씨성을 사여받았으며, 산성국(山城國) 갈야군(葛野郡) 대강향(大岡鄕) 지역에 살던 고난씨(高難氏)는 대구조(大丘造)의 씨명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동족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대구조(大丘造; 오오카노미야츠코)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20_0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