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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해양국제사법판결선집

당사국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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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경계의 이 지역에 관한 당사자들 사이의 분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베냉에 따르면, 경계는 메크루강중간선을 따른다. 한편으로는 우티 포시데티스 유리스 원칙의 적용으로부터, 그들의 독립일에 다호메이와 니제르의 영토는 유효한 법적 권원과 실효성의 양자에 따라 그 강의 경로에 의하여 분리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된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고 어떤 경우이건, 1973년과 1974년에 됴둉가댐을 건설할 목적으로 두 당사자 간에 협상이 있었을 당시, 실로 메크루강이 그들 각각의 영토의 경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니제르가 공식적으로 승인함으로써, 그러한 경계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베냉은 1973년 8월 29일의 구상서와 1974년 2월 8일에 양 당사자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회의의 회의록을 원용하는데, 이들 두 문서에는 모두 메크루강이 양국 간의 경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니제르에 따르면, 문제가 된 지역에서의 경계는 두 개의 부분을 구성하는 선을 따른다: 첫째는 파리 자오선이 카타코라 산맥과 만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메크루강니제르강과 합류하는 지점과 연결되는 직선이다: 둘째 부분은 세이 권역과 파다 권역의 예전의 경계가 파다 권역과 아타코라 권역 사이의 예전의 경계가 만나는 지점을 파리 자오선이 카타코라 산맥과 만나는 지점과 연결한 것이다. 그것은 식민지 기간 동안에 문제가 된 지역에서 다호메이와 니제르 사이의 경계를 확정한 규정관련 문서들, 즉 파다-엔구르마 권역과 세이 권역을 식민지 오-세네갈과 니제르(니제르는 그것을 승계하였다)에 합병시킨 1907년 3월 2일자 포고와, 후자의 식민지와 다호메이 사이의 경계를 수정한 1909년 8월 12일 및 1913년 4월 23일자 포고(위 제39 문단을 보라)의 효과가 결합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라고 주장되었다. 베냉이 원용한 1973년과 1974년의 문서들에 관하여 니제르는, 그것들이 법적 의무를 창설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48조 1항에 규정되어 있는 바와 같이 국제 협약의 하자에 관한 관습법 규칙에 따라 그것의 모든 효력을 박탈하는 명백한 착오에 의하여 그러한 의무는 흠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래 144페이지 이하의 제5번 개략도는 메크루강 지역에서의 경계에 관한 당사자들의 주장을 보여준다.
개략도 제5번

색인어
지명
메크루강, 카타코라 산맥, 메크루강, 니제르강, 세이, 파다, 파다, 아타코라, 카타코라 산맥, 파다-엔구르마, 세이, 메크루강
사건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법률용어
중간선, 우티 포시데티스 유리스 원칙, 실효성
오류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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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국 주장 자료번호 : nj.d_0003_0010_006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