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강조(若江造; 와카에노미야츠코)
약강조(若江造; 와카에노미야츠코)
후한(後漢) 영제(靈帝)의 후예인 나솔(奈率) 장안력(張安力)으로부터 나왔다.
【주석】
1. 약강조(若江造)
약강(若江)의 씨명은 하내국(河內國) 약강군(若江郡)의 지명으로부터 나왔다.
약강조씨 일족으로는 『일본후기』 연력(延曆) 24년(805) 6월 신해조에 외종5위하 약강조가계(若江造家繼)를 전약윤(典藥允)으로 삼았다는 약강조씨 인명이 보이고, 동 홍인(弘仁) 원년(810) 10월 기사조에도 “내약정(內藥正) 외종5위하 약강조가계를 미장권개(尾張權介)을 겸하게 하고 시의(侍醫)는 그대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의약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서 조정에 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약강(若江)의 씨명은 하내국(河內國) 약강군(若江郡)의 지명으로부터 나왔다.
약강조씨 일족으로는 『일본후기』 연력(延曆) 24년(805) 6월 신해조에 외종5위하 약강조가계(若江造家繼)를 전약윤(典藥允)으로 삼았다는 약강조씨 인명이 보이고, 동 홍인(弘仁) 원년(810) 10월 기사조에도 “내약정(內藥正) 외종5위하 약강조가계를 미장권개(尾張權介)을 겸하게 하고 시의(侍醫)는 그대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의약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서 조정에 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나솔장안력(奈率張安力)
나솔은 백제의 관위 16계 중에서 6위에 해당한다. 관위명으로부터 장안력(張安力)이 백제계 도래인임을 알 수 있다. 『영락유문(寧樂遺文)』 하-886(『家傳』 下, 神龜 5년경)에 방사(方士)로서 길전련의(吉田連宜) 등과 함께 장복자(張福子)라는 인명이 보인다. 그는 『만엽집』(권제5, 829)에도 ‘약사장씨복자(藥師張氏福子)’로 등장하며 천평(天平) 2년(730) 정월에 그의 노래 1수가 실려 있다.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이때의 약사가 대재의사(大宰醫師)를 가리키며, 전약정(典藥正), 시의(侍醫), 내약정(內藥正) 등을 두루 역임한 약강조가가(若江造價家)의 조부에 어울리는 인물로 추정한다.
나솔은 백제의 관위 16계 중에서 6위에 해당한다. 관위명으로부터 장안력(張安力)이 백제계 도래인임을 알 수 있다. 『영락유문(寧樂遺文)』 하-886(『家傳』 下, 神龜 5년경)에 방사(方士)로서 길전련의(吉田連宜) 등과 함께 장복자(張福子)라는 인명이 보인다. 그는 『만엽집』(권제5, 829)에도 ‘약사장씨복자(藥師張氏福子)’로 등장하며 천평(天平) 2년(730) 정월에 그의 노래 1수가 실려 있다.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이때의 약사가 대재의사(大宰醫師)를 가리키며, 전약정(典藥正), 시의(侍醫), 내약정(內藥正) 등을 두루 역임한 약강조가가(若江造價家)의 조부에 어울리는 인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