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명사리유적

明沙里遺蹟
  • 저필자
    문수균(미래문화재연구원)
  • 날짜
    1962
  • 시대
    청동기, 초기철기
  • 위치
  • 원소장처
    황해남도 신천군 가련면 명사리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입지
1962년 3월 발견되어 조사.
유적개관
1962년초 명사리 무랑개골이라고 부르는 3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의 산비탈 끝 5×4m 구획 안에서 두개의 항아리 입을 맞대어 만든 이음식으로 동서방향으로 하여 수평형태로 묻혀 있었음. 서쪽 화분형토기는 입지름 20㎝, 높이 29㎝이고, 동쪽 물동이형토기는 입지름 22㎝, 높이 33㎝로 모두 바닥이 편평하며, 민무늬토기형식.
출토유물
* 화분형, 물동이형 단지
참고문헌
신천 명사리에서 드러난 고조선 독널에 관하여
해설
황해도 신천군 가련면 명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독무덤이다. 유적은 1962년 3월무랑개골에서 저수지공사를 하던 중 널무덤(土壙墓)과 같이 발견되었다. 독널은 두개의 항아리 입을 맞대어 만든 이음식(合口式)이며, 동서방향으로 하여 수평형태로 묻혀 있었다. 독널로 쓰인 토기는 단단하게 구워진 화분형토기와 양쪽에 쇠뿔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물동이형토기인데, 화분형이 서쪽, 물동이형이 동쪽에 놓여 있었다. 모두 바닥이 편평하며, 민무늬토기형식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명사리옹관묘와 같이 널무덤이 섞여 있는 것으로는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 옹관묘가 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독널은 길이가 짧고 몸체가 좁아 어른의 시체를 묻기에는 부적당하며, 어린이를 묻는 데 사용하거나 2차 매장용으로 사용한 것이다. 독널에는 부장품이 전혀 없었고, 널무덤에서는 항아리 네개가 함께 묻혔는데, 이것은 미송리식 토기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명사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40_0070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