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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11) 가마(窯址)

11) 가마(窯址)주 001
각주 001)
정석배가 발굴조사보고서와 관련 논저들을 참고하여 작성한 크라스키노성의 가마에 대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다: 정석, 배2015, 「발해의 가마(窯)에 대한 일고찰」, 『선사와 고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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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호 가마(1994-1호 가마)
1994년에 제9구역에서 조사되었다(도면 60). 1994년도 발굴조사보고서에는 1호 가마로 보고되었지만 나중에 2호 가마로 명칭을 바꾸었다. 2호 가마는 금당지 남동쪽에 있는 전각지의 남쪽에 위치한다. 층위 상 전각 지붕에서 무너져 내린 기와무지와 석열(‘추정 담장’) 아래에 위치한다. 노출 상면은 크기가8 ×2m인 불탄 얼룩 형태였다. 가장자리에는 오렌지색의 소토가 잘 확인되었고, 윗부분에는 회색의 소토덩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도면 60 | 크라스키노성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가마 배치도
가마의 장축은 북서-남동 방향이다. 회구부, 아궁이와 연소실, 소성실, 배연구와 굴뚝으로 이루어져 있다(도면 61). 가마는 생토 아래 0.5m 깊이로 내려간 4.4×2m 크기의 사다리꼴 구덩이 모양을 하고 있다(도면 62). 가마의 네 벽은 모두 돌을 쌓아 만들었다. 벽에 쌓은 돌은 높이 0.4m까지 남아 있으며 석벽의 너비는 0.2~0.3m이다. 반죽한 흙으로 보강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도면 61 | 크라스키노성 2호 가마 평단면도(1994)
도면 62 | 크라스키노성 2호 가마 모습(1994)
아궁이는 양쪽으로 큰 돌을 세워 만들었는데 너비는 0.5m, 높이는 0.4~0.5m이다. 아궁이 앞 쪽에는 크기 1.85×2m, 깊이 0.5m인 바닥이 둥그스름한 구덩이 모양의 회구부가 있다. 회구부는 암색의 숯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아궁이를 정리 조사할 때에 발견된 큰 암키와 편들은 아궁이 위를 덮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소실은 크기가 0.9×0.8m로 추정되었다. 연소실과 소성실의 경계는 교란으로 인해 분명하지가 못하였다. 소성실은 크기가 3×2m이며, 바닥에는 진흙을 발랐다. 소성실의 내부퇴적토에서 천정 벽토덩이들과 함께 와편들이 섞여 있었다. 천정 벽토의 안쪽에 불에 탄 나무 잔가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가마 천정은 먼저 나무 잔가지를 엮어 틀을 만들고 그다음에 그 위로 흙을 발라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가마 바닥에서 수키와와 암키와 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이 잘 소성된 상태였으나 굴뚝 쪽의 것들은 소성이 불량하였다.
소성실과 굴뚝의 연결 부위에는 2개의 판돌을 나란히 세워 배연구를 만들었다. 배연구의 두 판돌 사이의 간격은 0.2m이다. 소성실과 굴뚝 사이에는 높이 0.1m, 너비 0.2m로 낮게 턱이 형성되어 있는데 통풍을 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굴뚝은 크기가 0.45×0.55m이며, 깊이는 소성실 쪽은 0.2m, 바깥쪽은 0.6m이다. 굴뚝 바닥 부분에서 다량의 암키와 편이 노출되었는데 굴뚝의 벽을 보강하는데 쓰였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체적으로2호 가마는 전각지 지붕기와무지 아래에서 발견되었고 또 출토 기와도 전각지의 것들과 동일하기 때문에 전각지의 지붕에 쓰일 기와를 구운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만 한국어 보고서에는 이 가마에서 회구부는 연소실로, 연소실과 소성실은 소성실로 각각 파악하였으며, 도면은 벽체의 돌을 제거하고 난 상태의 것을 제시하였다.주 002
각주 002)
문명대・이남석・V.I.볼딘 외, 2004,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 사원지 발굴 보고서』, 고구려연구재단, 도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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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가마는 3호 가마와 함께 전각 지붕이 무너진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금당과 전각 지붕에 사용한 기와를 생산하였던 곳으로 판단하였다.
(2) 3호 가마(1994-2호 가마)
1994년에 제9구역에서 조사되었다. 1994년도 발굴조사보고서에는 2호 가마로 보고되었지만 나중에 3호 가마로 명칭을 바꾸었다. 3호 가마는 금당지 남동쪽 전각지의 남동쪽에 위치하고2 호 가마와는 북동쪽으로 약4 m 떨어져 있다. 보존 상태가 매우 나쁜데 전각지를 세울 때에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가마 전체의 잔존 크기는 4.6×2.2m이고, 깊이는 0.45m이다. 장축은 남서-북동 방향이다(도면 63). 가마의 내부는 다량의 숯과 벽토덩이가 포함된 암회색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아궁이 부분이 가장 잘 보존되었고 그 앞의 회구부도 확인된다. 평면도와 단면도를 통해 보면 회구부는 길이가 약 1.5m, 너비가 약 1.4m정도 되는데 가운데 낮게 단이 하나 져있다. 보고서에는 이 단이 진 부분의 구덩이는 크기가0 .8×0.6m, 깊이가 약 0.6m임을 전하고 있다. 이 구덩이는 숯과 숯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고, 바닥은 5㎝ 두께로 진흙을 바른 것이 확인되었다. 아궁이는 수직으로 세운 2개의 돌에 의해 구분되었는데 두 돌 사이의 간격은 0.2m이고 돌의 높이는 0.4m이다. 연소실은 심하게 달구어졌고, 아궁이에서 0.8m 거리까지 3~5㎝ 두께로 반죽 흙을 바른 것이 확인되었다. 그다음 소성실은 굴뚝 쪽으로 완만하게 높아진다. 소성실의 끝부분은 분명하지 못하고 굴뚝은 남아 있지 않다. 소성실의 잔존 깊이는 약 0.2~0.4m이다.
도면 63 | 크라스키노성 3호 가마 평단면도(1994)
3호 가마는 2호 가마와 마찬가지로 전각 지붕이 무너진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금당과 전각 지붕에 사용한 기와를 생산하였던 곳으로 판단하였다.
(3) 4호 가마
1997년에 제15구역에서 조사되었다. 성벽 및 남서쪽의 우물과 인접하여 위치한다. 장축은 남동-북서 방향이다. 가마의 벽은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자갈돌을 주로 사용하였다. 가마의 석벽 안쪽에는 잘게 쓴 풀을 섞은 반죽 흙을 2~3.5㎝ 두께로 발랐다. 가마 벽의 너비는 장축 방향 벽은 40㎝, 단축 방향 벽은 25㎝까지이며, 높이 70㎝까지 남아 있다. 가마는 회구부, 아궁이와 연소실, 소성실, 배연구와 굴뚝으로 이루어져 있다(도면 64).
도면 64 | 크라스키노성 4호 가마 평단면도(1997)
회구부는 길이 1.22m, 너비 1.2m, 깊이 0.65~0.7m의 구덩이 모양이다. 아궁이는 가마 남동쪽 가로 방향 석벽의 가운데 부분에 작은 구멍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아궁이 위는 바깥쪽을 암키와로 덮었다. 아궁이의 크기는 높이 30~35㎝, 너비 90㎝이다. 연소실은 크기가 124×144㎝이며, 바닥은 단단하게 달구어진 사질점토였다.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는 높이 15~20㎝의 단벽이 있다. 이 단벽 위로는 부와시설이 있어 두 실이 더욱 분명하게 구분된다. 연소실에서는 벽토덩이, 숯, 불탄 돌, 기와 편들 등이 다량 확인되었다.
소성실은 크기가 길이 260㎝, 너비 170㎝이다(도면 65). 소성실의 윗부분은 벽토덩이, 천정 잔재, 불탄 흙 등으로 덮여 있었고, 속은 벽토덩이와 숯 등이 섞인 갈색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소성실의 바닥은 진흙과 모래를 섞은 흙을 단단하게 다져 조성하였는데 북서쪽은 푸른색이고 남동쪽은 적색으로 달구어진 색이다.
도면 65 | 크라스키노성 4호 가마 모습(1997)
굴뚝은 소성실 끝부분의 밖에 2개가 있는데 소성실의 북서쪽 벽과 바로 인접하는 성벽 사이에 가운데로 돌을 쌓아 2개의 굴뚝을 구분하였다. 굴뚝의 크기는 아궁이쪽에서 보아 오른편의 것은39 ×44×70㎝, 왼편의 것은 44×44×56㎝이다. 두 굴뚝 모두소 성실과의 사이에 있는 배연구와 연결된다. 배연구는 각각 좌우에1 개씩의 돌을 세우고 위에 1개의 돌을 덮어 만들었다. 굴뚝은 두 곳 모두 암키와로 된 개폐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굴뚝의 윗부분은 불탄 사질토가 섞인 벽토 및 돌들로 덮여 있다. 유물은 회색의 암키와와 수키와가 많고, 소량의 토기도 있다. 토기 중에는 기벽이 두꺼운 윤제 토기가 깨어진 것도 있다.
1998년에 서로 겹 놓인 관계에 있는 8호 가마를 조사하면서 4호 가마의 석벽을 허물었는데 이 때 4호 가마의 석벽 내에서 수키와, 암키와, 그리고 착고기와의 편들이 발견되었다. 암키와 중에는 지두문기와도 있고 또 승문기와도 확인된다(1998 보고서 도면 168~171).
(4) 5호 가마
1997년에 발견되었고 1998년에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제15구역과 제16구역의 경계 부분에 위치하며, 4호 및 8호 가마에서 북동쪽으로 0.5m 떨어져 있다.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다. 자갈돌을 쌓아 만든 남서벽 일부와 연소실 입구의 기초부분 돌들만 남아 있었다. 가마 구덩이는 모두 확인되었는데 크기가5. 1×2.3m인 긴 타원모양이다. 장축은 남동-북서 방향이다. 가마 내부퇴적토에서 다량의 천정 잔재와 벽토덩이가 발견되었다. 가마는 회구부, 연소실, 소성실, 굴뚝으로 구성되었으나 가마의 북서 부분은 뒤에 만든 가마에 의해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다(도면 66; 67).
도면 66 | 크라스키노성 5호 가마 평단면도(1998)
도면 67 | 크라스키노성 5호 가마 모습(1998, 북서쪽에서)
회구부 구덩이와 연소실, 그리고 회구부 구덩이 앞쪽에서 깨어지거나 소성 시 형태가 일그러진 기와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회구부 구덩이의 크기는 1×1.2m이고, 깊이는 약 30㎝이다. 회구부 구덩이는 불에 탄 혹은 타지 않은 작은 벽토덩이들, 숯들, 작은 갈탄덩이들 등이 포함된 흑색의 재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연소실의 입구 오른쪽과 왼쪽에는 두 개의 큰 돌로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돌로 보아 연소실 입구의 크기는 너비가 55㎝, 높이가 15㎝, 깊이가 35~36㎝이었다. 연소실 입구 가까이에서 큰 와편이1 점 발견되었는데 연소실을 닫을 때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가마의 남동쪽에 위치하는 연소실 자체는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연소실의 크기는 1.2×1.1m이다. 연소실은 불에 탄 혹은 타지 않은 벽토, 천정 쪼가리들, 그리고 작은 와편들이 다량 함유된 적갈색의 불탄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적갈색 사질토는 중간의 암회색 사질토 간층에 의해 두 개의 층으로 구분되었다. 연소실의 아랫부분은 불에 탄 작은 벽토덩이들과 숯들이 섞인 흑색의 재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연소실 내에서 발견된 천정 쪼가리들에는 작게 자른 풀과 짚이 섞여 있었다. 일부 천정 쪼가리들의 두께는 10~12㎝이었다. 천정 쪼가리들은 높은 온도로 인해 겉이 유리화된 경우도 있고 또 기와가 붙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연소실과 소성실의 경계 가까이에서 와편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 있는데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의 단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소실의 벽은 석축 벽이다. 연소실 석벽은 두께가 32~40㎝이며, 잔존 높이는 50㎝까지이다. 석벽에는 두께 2~2.5㎝ 이상으로 벽토를 발랐다. 연소실의 바닥은 단단하게 달구어져 있었다. 연소실과 소성실은 기와로 된 단에 의해 구분된다.
소성실은 연소실보다 조금 넓은 너비와 연소실 사이에 시설된 단에 의해 구분된다. 소성실의 크기는 장축 방향이 길이 1.96m이고, 단축 방향이 1.3m이다. 소성실은 천정 잔해들과 벽토 그리고 숯이 포함된 재 사질토들로 채워져 있었다. 굴뚝은 보존되지 않았지만 굴뚝의 잔해로 보이는 작은 및 중간 크기의 돌들이 소성실 밖 가마의 북서쪽 부분에 모여 있었다. 가마에서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기와는 건축재로 사용된 것과 불량품으로 구분된다. 소성실에서도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출토 기와에는 수키와도 있고 암키와도 있다. 그중에는 지두문 장식이 된 암키와편도 19점이 있다. 5호 가마 내에서 180점의 와편이 발견되었는데 산화 소성한 것이 31.4%, 산화소성+환원소성 한 것이 1.7%, 환원 소성한 것이 66.9%이다.
5호 가마는 6호, 7호 가마 및 10호 가마와 겹 놓인 관계를 보인다(도면 68). 5호 가마의 소성실 북쪽 부분 내부퇴적토의 중간 높이에서 가마의 장축 방향으로 돌을 2겹으로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 바로 이 돌 쌓은 것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의 6호 가마의 일부이다. 5호 가마의 추정 굴뚝 부분 돌무지를 치우고 나자 그 아래에서 다른 작은 가마의 흔적이 노출되었는데 10호 가마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는 10호 가마 → 7호 가마 → 5호 가마 → 6호 가마가 차례로 축조 및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도면 68 | 크라스키노성 가마들 평면도(1998)
5호 가마에서는 180점의 와편이 출토되었다. 큰 와편이 164점인데 그중 46점은 수키와편이고, 118점은 암키와편이다. 다만 기와 중에서 소성실과 연소실의 경계 부분에서 출토된 것은 원래 가마의 구조와 관련된 것이고, 소성실 내에서 출토된 것은 소성 후의 불량품과 이곳에 폐기된 기와일 것으로 판단되었다. 와편들 중에는 지두문으로 장식된 것이 19점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산화 분위기에서 소성된 것(31.4%), 환원 분위기에서 소성된 것(66.9%), 산화 분위기에서 소성을 하다고 환원 분위기에서 마무리를 한 것(1.7%)이 각각 구분되었다.
(5) 6호 가마
1998년에 조사되었다. 5호 가마의 바로 위에 서로 겹 놓인 상태로 확인되었다. 5호 가마와 마찬가지로 제15구역과 제16구역 경계 부분에 위치한다. 5호 가마 소성실에 대한 조사 중에 가마 벽이 발견됨으로서 확인되었다. 소성실의 벽체와 연소실 그리고 회구부 구덩이가 모두 확인되었다. 가마의 벽체는 돌을 3줄 4겹으로 쌓아 만들었다. 가마 벽체의 잔존 높이는 50~55㎝이고, 너비는 26~32㎝이다. 가마의 윤곽은 모서리가 둥그스름한 거의 바른 장방형이며, 크기는 4.1×1.7m이다. 가마의 장축은 남동-북서 방향이다. 가마는 회구부, 연소실, 소성실 그리고 굴뚝으로 이루어졌다(도면 69). 연소실의 남동쪽 부분과 회구부 구덩이가 많이 훼손되었다.
도면 69 | 크라스키노성 6호 가마 평단면도(1998)
회구부에서는 다량의 깨어진 혹은 소성 시 일그러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내부 퇴적토에서 재와 숯 이외에 갈탄덩이들도 발견되었다. 회구부 구덩이의 크기는 1×0.7m이며, 깊이는 가운데는 30㎝, 가장자리는 20~21㎝이다.
연소실은 파괴가 심한 상태이나 전체적인 모양은 확인된다. 회구부 구덩이와 연소실 사이는 상대적으로 얕고 좁은 편이며, 그 왼쪽 부분에는 돌을 쌓은 것이 일부 남아 있다. 연소실의 크기는 소성실과의 경계 부분까지 남동-북서 방향으로 1.3m, 남서-북동 방향으로 1.1m이다. 연소실의 내부 퇴적물은 적갈색의 달구어진 사질토로서 불에 탄 벽토덩이들, 천정의 잔해들, 크고 작은 와편들, 숯 등이 들어있었다(도면 70). 천정 잔해의 덩이 안쪽에는 불에 탄 짚의 흔적이 잘 관찰되었다. 천정 쪼가리의 두께는 12~14㎝이며, 몇몇 천정 쪼가리들에는 높은 온도로 인해 와편들이 붙어 있다. 연소실 내부 퇴적물의 아랫부분에서는 흑색의 재 사질토와 함께 다량의 숯과 갈탄 덩이들이 발견되었다. 연소실과 소성실 경계 가까이에서는 기와무지가 발견되었는데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의 단이었다. 이 단은 암키와를 1줄로 4겹 쌓아 만든 것이었다. 이 단의 높이는 20㎝이고, 길이는 118㎝이며, 너비는 20~25㎝이다. 단에 사용된 기와는 온전한 것이 아니라 너비에 비슷하게 맞는 편이었으며, 볼록한 부분이 위로 가게 쌓았다. 이 단을 이루는 암키와들 중에는 지두문으로 장식된 것이 2점 있었다. 연소실의 양쪽 측벽과 바닥은 모두 심하게 타서 딱딱하며 두께 2~3㎝의 두꺼운 껍질을 이루고 있다.
도면 70 | 크라스키노성 6호 가마와 5호 가마(뒤쪽) 모습(1998)
소성실은 상대적으로 잘 남아 있다. 크기는 장축 방향이 길이 1.98m이고, 단축 방향은 길이 1.2m이다. 소성실의 내부 퇴적물은 소토덩이들과 천정 잔해들이 다수 포함된 적갈색의 달구어진 사질토이다. 소성실 바닥에서는 단단하게 다진 모래층이 노출되었는데 몇몇 부분에서는 점토와 섞여 있었다.
굴뚝은 소성실 뒤에 바로 인접하여 위치한다. 돌을 거의 방형이 되게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굴뚝 구멍의 크기는 40×45×50㎝이다. 굴뚝과 소성실 사이에는 방형의 배연구가 1개 있다. 배연구는 2개의 판돌을 좌우로 세우고 1개의 판돌을 그 위에 얹어 만들었다. 굴뚝에서 크기가 큰 암키와 편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굴뚝 개폐시설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6호 가마에서는 암키와와 수키와 등의 와편이 출토되었다. 또한 와편으로 만든 놀이 알도 출토되었다. 하지만 발굴조사보고서에 제시된 와편의 개수, 산화소성 와편의 비율 등이 5호 가마 출토 와편의 수치와 동일하다.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에는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유물 도면에는6호 가마에서 출토된 것으로 표시된 것들이 확인된다.
(6) 7호 가마
1998년에 제16구역에서 조사되었다. 5호와 6호 가마 조사 중에 발견되었다. 연소실 일부, 소성실 북동 모서리 부분의 벽체 일부가 잔존하였다. 가마 구덩이의 윤곽은 달구어진 땅의 경계를 통해 파악되었는데, 남동 부분이 말각인 거의 바른 장방형이었고, 크기는 4.1×1.7m이었다. 장축은 남동-북서 방향이다. 가마는 크기, 방향, 구덩이 내부퇴적토 등을 통해 회구부, 연소실, 소성실, 굴뚝의 4부분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었다(도면 71). 회구부에서는 와편과 갈탄덩이가 수점씩 발견되었다. 회구부 구덩이의 추정 크기는 0.9×0.6m이고, 깊이는 가운데 부분은 30㎝까지, 가장자리 부분은 15㎝ 정도이다.
도면 71 | 크라스키노성 7호 가마 평단면도(1998)
연소실은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때문에 회구부와 연소실의 경계가 분명하지 못하다. 연소실의 가운데 부분에서는 연소실과 회구부 사이의 벽에 쓴 돌들이 발견되었다. 연소실의 크기는 남동-북서 방향 길이가 1.1m, 남서-북동 방향 너비가 1.3m이며, 잔존 깊이는 15~18㎝이다. 내부퇴적물에서는 수키와 수점과 가마 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이 수개 발견되었다(도면 72). 가마 구덩이 양 측벽과 연소실 바닥은 심하게 불에 탔다.
도면 72 | 크라스키노성 7호 가마(가운데 바닥만 보임)와 5호 가마(우측) 모습(1998)
소성실은 상대적으로 가장 잘 남아 있는데 크기는 장축 방향 길이가 1.9~2m이고, 단축 방향 너비가 1.2~1.3m이다. 소성실의 내부 퇴적물 윗부분은 소토덩이가 다수 포함된 달구어진 적갈색 사질토로 되어있다. 소성실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에서는 자갈돌을 2줄로 쌓아 만든 가마 벽이 남아 있었다. 이 벽의 잔존 높이는 15~25㎝이다. 소성실의 바닥은 단단하게 달구어진 사질토층이다. 가마에서 모두 12점의 와편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환원소성을 한 것이다.
(7) 8호 가마
1998년에 제15구역에서 조사되었다. 8호 가마는 4호 가마의 바로 밑에 위치하며 4호 가마 축조 시에 파괴되었다. 소성실과 연소실의 벽 일부,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의 단, 회구부 일부가 각각 잔존하였다(도면 73). 가마의 벽체는 강돌로 쌓았다(도면 74). 잔존 가마 벽체의 높이는 25~35㎝이고, 너비도 25~35㎝이다. 가마의 윤곽은 달구어진 토양과 보다 짙은 색의 내부 퇴적토 그리고 잔존하는 석벽 등에 의해 구분되었다. 8호 가마는 평면상 거의 바른 말각 장방형이고, 크기는 5.2×2.1m, 장축은 남동-북서 방향이다. 회구부, 연소실, 소성실, 굴뚝으로 구성되었다.
도면 73 | 크라스키노성 8호 가마 평단면도(1998)
도면 74 | 크라스키노성 8호 가마 연소실과소성실 연결부 일대 서벽 모습(1998)
회구부 구덩이는 크기가 1.3×1.2m이고, 깊이는 가운데 부분은 35㎝, 가장자리 부분은 15~20㎝이다. 내부 퇴적물은 일그러진 기와 조각들, 소토덩이들, 숯들이 다량 섞인 갈색 사질토였다. 연소실은 4호 가마를 조성할 때에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연소실의 남서쪽 부분에서는 돌로 쌓은 가마의 벽체가 조금 남아있다. 연소실의 크기는 남동-북서 방향 길이가 1.2m이고, 남서-북동 방향 너비가 1.3m이며, 깊이는 25㎝까지이다. 연소실에서는 소토덩이, 숯, 작은 와편들 등이 발견되었다.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의 단은 기와를1 줄로 5겹을 쌓아 조성하였다(도면 75). 단의 높이는 18㎝이다. 잔존하는 연소실의 벽체는 표면이 심하게 불에 탔다. 소성실은 길이가 2.1m, 너비가 1.6m이다. 소성실의 내부 퇴적물에는 재와 숯 함유물들이 다량 들어 있었다. 바닥에는 진흙을 발랐고 단단하게 달구어져 있다. 소성실 바닥의 레벨은 연소실 부분과 굴뚝 부분이 13㎝의 차이를 보인다. 굴뚝은 파괴되었다.
도면 75 | 크라스키노성 8호 가마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 기와 단 모습(1998)
8호 가마에서는 59점의 와편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29점은 큰 크기이다. 큰 와편들 중 1점은 수키와이고 28점은 암키와이다. 암키와들 중에는 지두문으로 장식된 것이 6점이 있다. 와편의 색깔은 회갈색 2점, 갈색 6점, 속심은 갈색 표면은 흑색 1점, 흑색 1점이 각각 있다. 나머지는 모두 회색이다. 산화 분위기에서 소성한 것이 32%, 환원 분위기에서 소성한 것이 67.9%이다. 승문이 있는 것도 2점이 있다. 그 외에도 와편으로 만든 마연기(도면 1998-245, 2), 석기편(도면 1998-246, 2)이 출토되었다. 문양이 있는 토제 장식편(도면 1998-245, 1)도 발견되었다.
(8) 11호 가마
2000년에 제25구역에서 ‘생토’ 상면까지 조사를 한 제3인공층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가마의 존재는 석탄 쪼가리들이 부분적으로 섞여 있는 타원형의 소토 포함 사질토 얼룩이 노출됨으로써 파악되었다. 이 얼룩의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소토 껍질이 확인되었다. 다만 2000년에는 태풍으로 인해 가마의 내부조사를 하지 못하였고, 2001년에 조사가 실시되었다.
11호 가마는 불탄 흔적, 소토 덩이, 돌 그리고 회색 모래 등이 집중되어 있는 장타원형의 얼룩 모양으로 노출되었다(도면 76; 77). 가마 구덩이의 내부 퇴적토는 천정 조각들, 소토와 섞인 돌들, 회색 기와편들, 토기편들 그리고 모래였다. 가마 구덩이는 장축이 북서-남동 방향이었다. 가마의 남동쪽 절반은 심하게 파괴되었고, 다른 쪽 절반에는 부분적으로 두께 20㎝, 높이 20~30㎝까지 벽체가 남아 있었다. 곳에 따라서는 벽체 껍질이 돌과 섞여 있기도 하였다. 가마 구덩이의 길이는 3.4m, 폭은 1.5-1.8m, 깊이는 25-35㎝이다. 가마는 생토면의 단과 파괴된 깔은 돌들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북서쪽의 낮은 부분은 연소실로 보이는데, 내부 퇴적토에서 밤색의 목탄이 다량 발견되었고, 바닥에서는 재가 포함된 흑색의 무른 벽토가 확인되었다. 남동쪽 절반은 소성실이었다. 그 아래는 붉은색으로 탔다. 이곳에서 토제 고리(도면 2001-35)가 출토되었고, 회색 기와편들이 발견되었다.
도면 76 | 크라스키노성 11호 가마 평단면도(2000)
도면 77 | 크라스키노성 11호 가마 모습(2000)
(9) 12호 가마
2001년에 제25구역에서 조사되었다. 12호 가마의 윗부분은 제3인공층에서 불에 달구어진 적색 사질토 얼룩의 형태로 노출되었다. 이 가마는 파괴가 심하며, 깊이가 20~40㎝로 깊지 않고, 평면상 타원형이며, 장축이 북북서-남남동 방향이다(도면 78; 79). 구덩이의 길이는 바닥이 3.3m이고, 최대 폭이 1.3m이다. 가마는 불탄 사질토, 점토와 자른 풀을 섞어 만든 천정과 벽토덩이, 소토와 숯이 섞인 회색 모래 및 암갈색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가마 내부에서 회색 가와편들, 목탄과 가마 벽이 파괴되어 생긴 돌로 된 간층들 등이 확인되었다. 바닥은 불에 탔고, 불탄 흔적은 구덩이의 가장자리를 따라서도 확인되었다. 남동부분에는 부분적으로 두께 6~8㎝, 높이 20㎝까지 불에 탄 소토로 된 벽이 남아 있었다. 가마에서 가장 잘 남아 있는 부분은 구덩이의 남동부분에 만들어진 굴뚝자리였다. 굴뚝자리는 둥근 구덩이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직경은 약5 0㎝, 깊이는 25㎝이었고, 내부는 붉은색의 불탄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가마 연소실의 입구는 가마 구덩이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도면 78 | 크라스키노성 12호 가마와 13호 가마 평단면도(2001)
도면 79 | 크라스키노성 12호 가마와 13호 가마 모습(2001)
11호와 12호 가마는 제2생활면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기에서는 적색의 기와들도 출토되었다.
(10) 13호 가마
2001년에 제25구역에서 조사되었다. 12호 가마의 북동쪽에 바로 인접하여 25구역의 모서리 부분에서 불탄 흔적과 바닥에 작은 벽토 조각들이 있는 깊지 않는 구덩이의 일부가 노출되었다(도면 78; 79). 바로 이곳에서는 돌들과 적색 및 회색 기와편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구는 보다 이른 시기의 파괴된 가마 생산유구의 흔적일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가마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발굴조사보고서에는 이 추정 가마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13호 가마로 부르기로 한다. 하지만 가마의 구조에 대해서는 확인된 것이 없다.
(11) 추정 가마터
2006년에 제36구역의 북쪽 부분에서 조사되었다. 제3인공층 조사를 할 때에 발굴구역의 북쪽 부분을 따라 짙은 색의 얼룩 형태로 노출되었다(도면 80; 81). 이 얼룩의 노출 상면 너비는 1~1.7m이었다. 이 얼룩의 남쪽은 토양의 색깔이 무른 명갈색 사질토였다. 내부퇴적토에서 숯과 적갈색 소토 덩이 등이 많이 확인되었고, 또 돌들도 석여있었다. 이 추정 가마터 구덩이의 바닥 부분에서는 석열과 함께 적갈색의 불에 달구어진 부분도 있었다. 이 유구를 가마터로 추정한 것은 내부퇴적토에서 가마 벽토로 보이는 매우 단단한 소토 덩이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유구의 깊이는 도면에 표시된 레벨 수치를 통해 볼 때에 노출 상면에서 바닥까지 약3 5~40㎝로 생각된다. 너비는 노출 상면에서 아래로 가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북쪽으로 더 조사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유구의 정확한 성격은 파악되지 못하였다.
도면 80 | 크라스키노성 추정 가마 평면도(2006)
도면 81 | 크라스키노성 추정 가마 모습(2006)

  • 각주 001)
    정석배가 발굴조사보고서와 관련 논저들을 참고하여 작성한 크라스키노성의 가마에 대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다: 정석, 배2015, 「발해의 가마(窯)에 대한 일고찰」, 『선사와 고대』 43. 바로가기
  • 각주 002)
    문명대・이남석・V.I.볼딘 외, 2004,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 사원지 발굴 보고서』, 고구려연구재단, 도면 8.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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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가마(窯址) 자료번호 : kr.d_0016_0020_001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