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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상세련(常世連; 도코요노무라지)

상세련(常世連; 도코요노무라지)
 연국왕(燕國王) 공손연(公孫淵)으로부터 나왔다.
 
【주석】
1. 상세련(常世連)
상세(常世)의 씨명은 바다 건너 피안에 있다고 하는 이상의 국명에 기초한 신선 사상에 의한 관념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상세련(常世連)의 이전 씨명은 적염조(赤染造)이다. 『속일본기』 보귀(寶龜) 8년(777)4월조에는 적염국지(赤染國持), 적염인족(赤染人足), 적염장빈(赤染長濱), 적염대승(赤染帶繩) 등에게 상세련의 성을 내리고 있다. 적염조(赤染造)의 씨성을 갖은 상세련씨의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天武) 원년(672) 6월조에 적염조덕족(赤染造德足), 『속일본기』 천평 19년(747) 8월조에 적염조광족(赤染造廣足) 등이 있고, 『정창원문서』 등 기타의 사료에도 많은 인명이 보인다. 평야방웅(平野邦雄)은, 적염(赤染)에 대하여 신라와 가야계의 주술(呪術)이라고 추정하고, 이는 상세(常世) 신앙의 모체이며 적염이 상세로 개성한 것도 이러한 신앙에 기초한다고 보았다.
2. 연국왕공손연(燕國王公孫淵)
중국 삼국 시대 요동 양평(현재의 遼陽) 출신으로 위(魏) 태화(太和) 2년(228)에 요동태수가 되었다. 위 명제는 그를 대사마(大司馬)·낙랑공(樂浪公)으로 봉했다. 경초(景初)원년(237)에는 자립하여 연왕(燕王)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문무백관을 설치하고 연호를 소한(紹漢)으로 정했다. 그러나 소한 2년(238) 사마의(司馬懿)가 이끄는 위나라의 공격을 받아 항복했으나 죽음을 당한다. 연왕 공손연의 후손이라고 하는 상세련은 이 시기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진 시황이나 한 고조 같은 저명한 황제의 계보에 자신의 조상을 끼워 넣은 일은 흔히 있으나, 이 경우처럼 중앙이 아닌 중국 변방 연나라의 공손연 등에서 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조상에 대한 계보 인식이 계승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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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련(常世連; 도코요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1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