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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영안도 관찰사 이극돈이 삼봉도를 찾는 계책을 올리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481년 1월 9일(음)
  • 출전
사료해설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극돈(李克墩)이 동해에 존재한다는 삼봉도(三峯島)를 찾기 위한 계책을 올린 내용이다. 이극돈은 1479년 3개월 동안 삼동도를 수색한 김한경 등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삼봉도의 존재 자체가 허위일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바닷길이 험하고 삼봉도의 존재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차출하여 초무사를 파견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1479년(성종 10)에 있었던 경차관 조위(曺偉) 때처럼 함경도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 명으로 하여금 유서(諭書)를 가지고 들여보내어 삼봉도가 있는 곳을 탐지하게 하고 상황에 따라 섬주민을 쇄환할 것이지, 군사적 토벌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조정의 논의는 결국 함경도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 명에게 유서를 가지고 들여보내어서 삼봉도를 찾아 존재를 확인한 후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백성들을 쇄환하되, 명을 따르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어 가서 토벌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정부가 동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국민 관리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永安道觀察使李克墩, 上三峯島搜得之策: “一, 東北之海, 風浪險惡, 非他海之比, 且不知三峯島, 的在何處, 差人入送爲難。 但本道人民, 皆是遷徙之徒, 撤擧家産, 不以爲難, 性又愚惑, 信聽誑語。 若不於此時, 搜得此島, 明其背國之罪, 則愚民必曰: ‘國家大擧欲討, 而終不得, 他日我雖往投, 國家終無乃我何。’ 則非細故也。 倘有水旱之災, 兵戈之役, 則必有逃往背國之人。 臣意, 妄謂如今年招撫使之擧, 則倘有蹉跌, 其悔甚大。 宜如敬差官曺偉時例, 令本道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知島之所在, 勢可招撫, 則招之, 如不可敵, 則更遣師往討, 亦爲未晩。 且往返之間, 縱有所失, 不至大悔。 一, 前者往來者, 或云遙見, 或云不得見, 莫辨眞僞。 今也遣人搜覓, 如終無此島, 則將初發言金漢京輩, 明其誑語惑衆之罪, 置之極刑, 傳屍一道, 以示衆目, 則愚民亦知三峯島之必無, 而其胥動之惑, 自解。 一, 如明年春節入送, 則須於正月晦時, 諸事畢辦。 二月初到浦, 待風爲便。 待風只數十日之事, 如遷延數旬, 値霖雨, 則無風海暗, 終無發船之理。” 命議于領敦寧以上。 鄭昌孫、沈澮、尹士昕、尹弼商、洪應、盧思愼、李克培、尹壕議: “三峯島搜覓事, 從第一條, 令本道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覓島之所在, 的知在某處, 則更遣使招之, 如或不從, 遣師往討爲便。” 從之。
번역문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극돈(李克墩)이 삼봉도(三峯島)를 찾는 계책을 올리기를,
“1. 동북(東北) 해역은 풍랑이 험악하여 다른 해역과 비교가 안되며, 또 삼봉도가 확실하게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사람을 차출하여 들여보내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본도(本道)의 백성들은 모두 천사(遷徙)한 무리로서 가산(家産)의 철거(撤擧)를 어렵게 여기지 않으며, 성질도 어리석고 미혹하여 속이는 말을 곧이 듣습니다. 그러니 만약 이러한 때에 이 섬을 찾아 그들이 나라를 배반한 죄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국가에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토벌(討伐)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하지 못하였으니, 훗날 우리들이 비록 가서 투항한다 하더라도 국가에서 결국 우리들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한다면,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홍수와 가뭄의 재해(災害)나 전쟁의 역사(役使)가 있으면 틀림없이 도망해 가서 나라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금년 초무사(招撫使)의 행사 같은 경우는 혹시라도 차질(蹉跌)이 있게 되면 그 후회가 매우 클 듯합니다. 그러니 마땅히 경차관(敬差官) 조위(曺偉) 때의 예(例)와 같이 하여 본도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 명으로 하여금 유서(諭書)를 가지고 들여보내어 삼봉도가 있는 곳을 탐지(探知)하게 하여, 그 형편이 불러다 무마할 만하면 불러 들이고 만일 대적(對敵)할 수 없으면 다시 군사를 파견해 가서 토벌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비록 잃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후회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1. 지난번에 왕래(往來)한 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멀리서 보았다.’ 하고, 어떤 이는 ‘보지 못하였다.’ 하니,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분변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어 찾아 보고, 만일 끝내 이 섬이 없으면 처음에 이 말을 한 김한경(金漢京)의 무리들이 말로 속이고 대중을 미혹(迷惑)하게 한 죄가 분명하니, 극형(極刑)에 처하여 그 시체를 온 도(道)에 전하게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인다면, 어리석은 백성들도 삼봉도(三峯島)가 기필코 없다는 것을 알고 서로 선동(煽動)하여 미혹됨이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1. 만일 명년(明年) 봄철에 들여보낸다면 모름지기 정월 그믐께라야 모든 준비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2월 초에 포(浦)에 도착하여 순풍(順風)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순풍을 기다리는 것은 수십일 걸리는 일이니, 만일 수십 일 동안 끌다가 장마를 만나게 되면 바람은 불지 않더라도 바다가 어두워서 끝내 배를 출발시킬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도록 하였다. 정창손·심회·윤사흔·윤필상·홍응·노사신·이극배·윤호는 의논하기를,
“삼봉도를 찾는 일은 제1조(第一絛)를 따라 본도(本道)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 명에게 명하여 유서(諭書)를 가지고 들여보내어서 삼봉도가 있는 것을 탐사(探査)하여 찾도록 하고, 꼭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 사자(使者)를 보내어 그들을 부르되, 혹시라도 따르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어 가서 토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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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도 관찰사 이극돈이 삼봉도를 찾는 계책을 올리다 자료번호 : sd.d_0149_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