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니국(勃泥國)의 표문(表文)과 조공
[태종] 태평흥국 2년(977)에 국왕인 향타(向打)가 정사 시노(施弩)와 부사 포아리(蒲亞里), 판관 가심(哥心)등을 파견하여 표(表)를 올리고, 대편(大片) 용뇌(龍腦) 1가저(家底),주 001 2등품 8가저, 3등품 11가저, 미용뇌(米龍腦) 20가저, 창용뇌(蒼龍腦) 20가저를 진공했는데, 무릇 1가저(一家底)는 20량과 같다. 용뇌판(龍腦版) 5[개], 대모각(玳瑁殻) 100[개], 단향(檀香)주 002 3궐(橛), 상아 6주(株)도 함께 올렸다. 표를 올려 아뢰기를, “황제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나니, 소국의 예가 보잘 것 없음을 책하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그 표는 몇 겹의 작은 주머니로 함봉(緘封)했는데, 중국 종이가 아니고, 나무껍질 같기도 하지만 매우 얇으면서도 광택이 있고 매끄러웠으며 연녹색에 길이는 수척 넓이는 1촌(寸)이 조금 넘었고, 옆으로 돌돌 말면 겨우 손아귀에 꽉 차는 정도였다. 문자는 매우 세밀하고 작았으며 가로로 읽는데, 다음과 같이 한자로 번역해 놓았다. “발니국왕(勃泥國王) 향타(向打)가 머리를 숙여 절을 올리니, 황제폐하 만세만세 만만세, 황제폐하의 만세장수를 축원하면서, 지금 사절을 보내 진공(進貢)하고자 합니다. 향타는 조정(朝廷)이 있다는 것은 들어왔지만, 길을 몰라서 다다를 수 없었습니다. 근자에 상인 포로헐(蒲盧歇)의 배가 하구에 정박하여, 사람을 보내 주중(州中)으로 영접하니, 중국에서 왔는데 사파국(闍婆國)으로 가던 중에 폭풍을 만나 배가 파손되어 갈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중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국인(國人) 모두가 크게 기뻐하여, 바로 선박을 건조하고, 포로헐(蒲盧歇)로 하여금 입조하여 진공할 수 있게 인도하도록 하였으니, 파견한 사절들이 무사히 황제를 알현할 수 있기만을 희망합니다. 매년 명령을 내려 입조하여 조공을 바칠 것이나, 바람이 점성(占城) 경계로 부는 것이 걱정되오니, 황제께서 점성국에 조서를 내려서 만약 향타의 배가 도착하거든 구류하지 말라고 해주시길 희망합니다. 신하의 나라에는 귀한 물건이 없사오니 황제께서 책망하지 마시길 빕니다.” 표문의 내용이 이와 같았다. 조서를 내려 예빈원에서 그 사절들을 접대하게 하고, 특별히 후하게 하사하여 귀환하게 했다. [신종] 원풍(元豊) 5년(1082) 2월에, 왕 석리마야(錫理麻喏)
주 003가 다시 사절을 보내 방물을 조공했는데, 그 사절이 천주(泉州)에서 해박(海舶)을 타고 귀국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들어주었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색인어
- 이름
- 향타(向打), 시노(施弩), 포아리(蒲亞里), 가심(哥心), 향타(向打), 향타, 포로헐(蒲盧歇), 포로헐(蒲盧歇), 향타, 석리마야(錫理麻喏)
- 지명
- 중국, 사파국(闍婆國), 중국, 점성(占城), 점성국, 천주(泉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