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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대련 윤가촌 Ⅰ 유적

大連 尹家村 Ⅰ 遺蹟
  • 저필자
    이후석(숭실대학교)
  • 작성자
    東亞考古學會
  • 날짜
    1982
  • 시대
    청동기시대~한대
  • 위치
  • 원소장처
    요령성 대련시 여순구구 철산진 윤가촌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유적개관
* 목양성의 동남쪽으로 약 600~800m 떨어진 윤가촌 일대에 위치함.
* 1928년 목양성 주변의 한묘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석곽묘, 화장묘, 옹관묘, 토광묘, 전실묘 등의 무덤들이 다수 확인됨.
* 무덤들은 관둔자하로 불리는 윤가촌 남쪽의 마을 하천변에 밀집 분포하나 한묘의 경우 북서쪽의 유가촌과 조가촌 일대에도 분포가 확인됨.
* 1929년에는 관둔자 주변에서 철기부장묘가 확인되어 보고됨.
* 이외에도 윤가촌 일대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 동검, 동부, 청동검격 등이 수습된 바 있음.
유구개관
* 석곽묘는 보고서에 석묘로 기술된 것으로 해발 20m 미만의 관둔자하 북안을 따라 밀집 분포하고 있음. 이미 파괴된 것과 유가촌 방면의 것을 포함하여 모두 5기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3기가 발굴되어 보고됨.
* 토광묘는 보고서에 즉주묘(卽周墓)로 기술된 것으로 관둔자하 북안에 위치하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됨.
* 옹관묘는 4기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은 전한 전기의 무덤으로 추정됨. 석곽묘군과 그 북쪽 마을 소로의 사이에 산재되어 있음.
* 토광묘는 보고서에 패묘로 기술된 것으로 목관 또는 목곽 구조이며 모두 전한시기의 무덤으로 추정됨. 모두 7기가 확인되었으며, 주로 윤가촌 마을 북쪽 구릉에 밀집되어 있음.
* 전실묘는 15기가 확인되었는데 전한 후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됨. 마을과 관둔자하 사이에 8기, 마을 북쪽에 7기가 밀집되어 있음.
유물개관
* 각종 청동기, 철기, 석기, 토기류 등.
참고문헌
原田淑人·駒井和愛, 「牧羊城附近の古墓」, 『牧羊城-南滿洲老鐵山麓漢及漢以前遺蹟』, 1931
東亞考古學會 編, 「鐵器墓」, 『南山裡-南滿洲旅順老鐵山麓漢代甎墓』, 1933
해설
유적은 요동반도 서남단의 해안 구릉 위에 축조된 목양성(牧羊城)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1928~1929년 동아고고학회에 의해 목양성 주변의 한대 분묘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독널무덤[옹관묘(甕棺墓)], 움무덤[토광묘(土壙墓)], 벽돌무덤[전실묘(磚室墓)] 등의 무덤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무덤들은 관둔자하(官屯子河)로 불리는 윤가촌 남쪽의 마을 하천변에 밀집 분포하나 한대 분묘들은 주변의 구릉 일대에도 널리 분포한다.
돌덧널무덤은 보고서에 석묘(石墓)로 기술된 것으로 모두 토착계 무덤이다. 해발 20m 미만의 관둔자하 북안을 따라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이미 파괴된 것을 포함하여 모두 5기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3기가 발굴되어 있다. 나무널[목관(木棺)]과 무덤구덩이[토광(土壙)] 가장자리 사이에 깬돌이나 강돌을 돌려 놓은 구조여서 돌무지나무널무덤[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으로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굽접시[두형토기(豆形土器)]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이후 초기철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움무덤은 보고서에 주말(周末)~한초(漢初)의 것이라고 하여 즉주묘(卽周墓)로 기술된 토착계 무덤이다. 관둔자하 북안의 단애면에 위치하며, 대부분은 유실된 상태이나 화장(火葬) 흔적이 남아 있다. 말기 비파형동검 또는 초기 세형동검으로 볼 수 있는 동검이 출토되어 기원전 4세기대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독널무덤은 4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중원계 무덤이다. 토기 2~3개를 뉘인 후에 아가리나 뚫린 바닥을 서로 연결하여 놓은 소위 합구횡치식(合口橫置式) 옹관묘이다. 돌덧널무덤(또는 돌무지널무덤)과 그 북쪽 마을 소로의 사이에 산재되어 있다. 특히 3호묘는 무문토기와 한대토기가 조합된 것이어서 토착집단이 연나라의 묘제를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부분은 전한 전기 또는 기원전 2세기대에 해당된다.
움무덤은 보고서에 패묘(貝墓)로 기술된 무덤으로 7기가 확인되어 있다. 나무널[목관(木棺)이나 나무덧널[목곽(木槨)] 주위에 패각을 채워 넣은 구조이며, 모두 전한 시기의 무덤이다. 윤가촌 마을 북쪽 구릉에 밀집되어 있다. 주로 토기들이 다량 부장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1929년에는 보고서에 ‘남산리 철기묘(南山裡鐵器墓)’로 기술된 철기 부장묘도 확인되었는데, 대형토기 안에 다량의 철제 농공구를 넣어 둔 점이 특징이다.
벽돌무덤은 15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중원계 무덤이다. 전한 후기 또는 기원 전후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과 관둔자하 사이에 8기, 마을 북쪽에 7기가 밀집되어 있다. 토기류가 다량 부장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윤가촌 일대의 여러 지점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동부(銅斧), 동검 부속 등이 수습된 바 있어 청동기시대 이래 오랫동안 분묘가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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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 윤가촌 Ⅰ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10_0020_004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