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구간(동벽 시굴 지점 외)
3) 제3구간(동벽 시굴 지점 외)
제3구간은 동벽이 남벽과 접하는 지점으로부터 북쪽으로 116.7m 지점까지의 동벽을 말한다. 즉, 동벽 남단 구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성벽 일반에 대한 조사는 거의 없었고, 2004년 북측이 시굴한 지점을 육안으로 간단하게 확인함과 동시에 남벽으로부터 113m 처를 이번에 새로 시굴 조사하기만 하였다. 기왕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시굴 지점의 성벽은 구 지표로부터 생토까지 파고 다진 다음 그 위에 석축을 하고 석축 내부와 위에 판축을 하여 축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성벽의 규모는 동문 내외와 동문 북쪽 구간은 잔존 높이가 1.6~2.2m, 석축부 높이가 1.1~1.6m(5~7단)이다.
● 2004년 북측 시굴 지점 ●
남벽으로부터 북쪽으로 7m 처 동벽 바깥 측에 길이 4m, 너비 1.5m 크기의 시굴 후 일부 복토한 지점이 있는데, 남일룡에 의하면 2004년 4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생들의 실습을 목적으로 시굴한 것이라고 한다. 단, 시굴 조사의 성격이 조사 원리와 방식을 학습시키는 것이었기에 성기석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일룡의 전언에 의하면, 성벽과 현재의 지표(노토)가 만나는 지점을 시굴하였는데, 현 지표 아래 40cm에서 물이 침투되어 조사를 마쳤다고 한다. 이외 현 지표 위로 50cm 가량 성벽을 노출하였는데, 당시 노출된 대형 석재가 지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주 062
● 2006년 남북 공동 시굴 지점 ●
이번에 남북이 공동으로 시굴 조사한 지점은 동벽이 남벽과 접하는 지점으로부터 북쪽으로 113m 처이다. 시굴 조사는 동벽 바깥 측이 현재의 지표(노토)와 접하는 지점에 길이 3.68m, 너비 1.2m의 탐색 구덩이를 넣어 석축 기초부까지 제토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그런데 전체 탐색 구덩이 가운데 남쪽 1.5m를 제외한 나머지 2.18m는 기왕에 북측에서 발굴 당시 조사한 지점이다.주 063시굴 조사 지점을 이와 같이 잡은 까닭은 시굴 조사할 수 있는 기간이 실측까지 포함하여 하루 반 밖에 주어지지 않은데다 중대형 급의 본격적인 조사가 아니므로 성벽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따라 우선 기존에 발굴하였던 성벽 구간 중 일부를 선정하여 기 조사에서 석축 바닥으로 인정한 지점까지 수직으로 파 들어갔는데, 노출 결과 예상했던대로 석축부가 토압으로 상당히 밀려나와 있어 성벽의 원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기 조사에서 성기석으로 인정하였던 대형 석재 아래의 흙이 생토 또는 성벽 기초 다짐으로는 도저히 인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왕에 발굴 조사된 남쪽 끝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다시 1.5m, 너비 0.6m를 확장하여 시굴하였고, 그 결과 기 조사면 지하 0.8m에서 석축의 최하단부가 확인되었다. 확장 구덩이에 노출된 석축부는 도합 여섯 단인데, 맨 밑의 1~2단은 면석 기준 길이0.9~1m, 너비 0.2~0.35m의 대형 석재가, 그 위에는 길이 0.4~0.6m, 너비 0.14~0.24m의 중소형 석재가 들여쌓기 되어 있었다.
한편 확장 시굴 구덩이 옆, 즉 기왕에 북측에서 발굴한 지점에는 전체 일곱 단으로 인정되는 석축부가 노출되어 있는데, 확장 시굴 구덩이에서 드러난 원래의 성벽 상태를 기준으로 할 때 전체적으로 성벽 바깥 쪽으로 최대 0.45m가량 밀려나와 있고, 비록 토압에 의해 상당히 변형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들여쌓기 방식으로 축석되어 있다. 이 부분의 노출된 석축부의 전체 높이는 1.75m이다. 따라서 기 발굴 지점의 석축과 이번에 확장 시굴된 지점의 석축을 합칠 경우, 그리고 현재 노출되어 있는 상태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이 지점의 성벽 석축부는 최소 열 단으로 축석되어 있는 셈이 된다.
토층은 확장 시굴 구덩이의 남벽을 기준으로 할 때 표토층까지 합쳐 전체 8개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I층은 흑갈색 부식토층으로 두께가 25~40cm, 제II층은 명갈색 사질점토층으로 두께가 5~10cm, 제III층은 숯과 잔돌이 20% 가량 포함되어 있는 흑갈색 사질점토층으로 두께가 2~20cm, 제IV층은 다량의 잔돌과 굵은 모래가 섞여 있는 암갈색 사질점토층으로 두께가 최대 15cm, 제V층은 숯과 잔돌이 20% 가량 포함되어 있는 암갈색 점토층으로 두께가 최대 22cm, 제VI층은 소형 성돌과 굵은 모래가 섞여 있는 명갈색 점토층으로 두께가 36~68cm, 제VII층은 흑색 뻘층으로 두께가 38~66cm, 제VIII층은 단단하게 다져진 적색점토층으로 최고 두께가 17cm이다.
위의 토층 가운데 제I~IV층까지는 숯과 잔돌이 섞여 있고 토색과 입자가 불순하며 수평 상으로 퇴적되어 있다. 게다가 제III층은 표토층과 토색과 밀도 및 함유물이 유사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제I~IV층은 1958~1971년 북측의 발굴 이후 퇴적된 것이 분명하고 제III층은 이 기간 중 일정 기간 동안 표토층(부식토층)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제V~VI층은 성벽이 허물어져 퇴적된 것이 분명한데, 이중 VI층은 바닥에 얇게 모래가 퇴적되어 있고 소형 성돌이 섞여 있어 더욱 확연하다. 제VII층은 VI층이 퇴적되기 전에 동벽을 타고 일정 규모의 수로가 흘렀던 정황을 나타내준다. 마지막 제VIII층은 성돌의 밀림을 방지하기 위해 단단히 다져 놓은 턱 다짐토이다.
한편 확장 시굴 구덩이 옆, 즉 기왕에 북측에서 발굴한 지점에는 전체 일곱 단으로 인정되는 석축부가 노출되어 있는데, 확장 시굴 구덩이에서 드러난 원래의 성벽 상태를 기준으로 할 때 전체적으로 성벽 바깥 쪽으로 최대 0.45m가량 밀려나와 있고, 비록 토압에 의해 상당히 변형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들여쌓기 방식으로 축석되어 있다. 이 부분의 노출된 석축부의 전체 높이는 1.75m이다. 따라서 기 발굴 지점의 석축과 이번에 확장 시굴된 지점의 석축을 합칠 경우, 그리고 현재 노출되어 있는 상태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이 지점의 성벽 석축부는 최소 열 단으로 축석되어 있는 셈이 된다.
토층은 확장 시굴 구덩이의 남벽을 기준으로 할 때 표토층까지 합쳐 전체 8개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I층은 흑갈색 부식토층으로 두께가 25~40cm, 제II층은 명갈색 사질점토층으로 두께가 5~10cm, 제III층은 숯과 잔돌이 20% 가량 포함되어 있는 흑갈색 사질점토층으로 두께가 2~20cm, 제IV층은 다량의 잔돌과 굵은 모래가 섞여 있는 암갈색 사질점토층으로 두께가 최대 15cm, 제V층은 숯과 잔돌이 20% 가량 포함되어 있는 암갈색 점토층으로 두께가 최대 22cm, 제VI층은 소형 성돌과 굵은 모래가 섞여 있는 명갈색 점토층으로 두께가 36~68cm, 제VII층은 흑색 뻘층으로 두께가 38~66cm, 제VIII층은 단단하게 다져진 적색점토층으로 최고 두께가 17cm이다.
위의 토층 가운데 제I~IV층까지는 숯과 잔돌이 섞여 있고 토색과 입자가 불순하며 수평 상으로 퇴적되어 있다. 게다가 제III층은 표토층과 토색과 밀도 및 함유물이 유사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제I~IV층은 1958~1971년 북측의 발굴 이후 퇴적된 것이 분명하고 제III층은 이 기간 중 일정 기간 동안 표토층(부식토층)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제V~VI층은 성벽이 허물어져 퇴적된 것이 분명한데, 이중 VI층은 바닥에 얇게 모래가 퇴적되어 있고 소형 성돌이 섞여 있어 더욱 확연하다. 제VII층은 VI층이 퇴적되기 전에 동벽을 타고 일정 규모의 수로가 흘렀던 정황을 나타내준다. 마지막 제VIII층은 성돌의 밀림을 방지하기 위해 단단히 다져 놓은 턱 다짐토이다.
- 각주 062)
- 각주 063)
- 각주 064)
- 각주 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