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안(高安)을 고구려왕에 제수함
신구 연간(518~519)에 운이 죽자, 영태후(?~528)주 001가 동당에서 거애하고, 사신을 보내 책명하여 거기대장군·영호동이교위주 002
번역주 002)
·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에 추증하였다. 또 그의 세자 안(안장왕, 재위: 519~531)을 안동장군주 003·영호동이교위·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에 제수하였다. 정광(520~524) 초에 광주에서 또 다시 소연(양 무제, 재위: 502~549)주 004이 안에게 내린 영동장군주 005의 의관과 검, 패물 그리고 사신 강법성 등을 바다에서 사로잡아, 경사(낙양)로 보냈다. 領護東夷校尉 : ‘領護’ 군관직은 본래 동이를 監護하던 군관직으로 漢 이래로 주변 이민족 통제를 담당한 2,000석 官位의 군관에게 제수되었다. 따라서 이들 제관을 ‘領護軍官’이라 칭하기도 한다(李周鉉, 2008). ‘校尉’는 戰國時代부터 설치된 무관직으로, 秦漢 시기의 교위는 1개 ‘校’를 통솔한 중급 군관이었다. 북위 시기 주변 제 민족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領護校尉’로는 ‘護羌’, ‘護戎’, ‘護夷’, ‘護蠻’, ‘護越’ 등이 있는데, ‘領護中郞將’과 직책이 동일하나, 그 지위는 조금 낮다. 북위는 太武帝시기 領護東夷校尉를 두었으며, 493년 孝文帝의 職員令 개편 이후 護夷校尉로 고쳤다. 그 품계는 正3品下이다.
-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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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2)
領護東夷校尉 : ‘領護’ 군관직은 본래 동이를 監護하던 군관직으로 漢 이래로 주변 이민족 통제를 담당한 2,000석 官位의 군관에게 제수되었다. 따라서 이들 제관을 ‘領護軍官’이라 칭하기도 한다(李周鉉, 2008). ‘校尉’는 戰國時代부터 설치된 무관직으로, 秦漢 시기의 교위는 1개 ‘校’를 통솔한 중급 군관이었다. 북위 시기 주변 제 민족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領護校尉’로는 ‘護羌’, ‘護戎’, ‘護夷’, ‘護蠻’, ‘護越’ 등이 있는데, ‘領護中郞將’과 직책이 동일하나, 그 지위는 조금 낮다. 북위는 太武帝시기 領護東夷校尉를 두었으며, 493년 孝文帝의 職員令 개편 이후 護夷校尉로 고쳤다. 그 품계는 正3品下이다.
- 번역주 003)
- 번역주 004)
- 번역주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