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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비조사/아스카데라

飛鳥寺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비조시대/아스카시대(飛鳥時代)
  • 위치
  • 원소장처
    나라현(奈良縣) 다카이치군(高市郡) 아스카촌(明日香村) 아스카(飛鳥) 682
  • 시대
    고구려
  • 유형
    사찰
유적개관
7세기 아스카에 건립된 불교 사원으로, 고구려의 정릉사와 동일한 일탑삼금당의 가람배치를 보여준다. 건립시 백제 공인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고구려 왕이 황금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어서,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추정해볼 수 있다.
유물개관
곱은옥, 금환, 청동말방울, 괘갑, 기꽂이 등
해설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불교 사원이다. 창건 당시에는 법흥사[호코지(法興寺)], 원흥사[간고지(元興寺)]로 명칭하다가 곧 아스카데라로 개칭하였다. 현재는 안고원[안고인(安居院)]으로 불린다.
헤이안시대인 12세기 무렵까지는 융성했으나 이후 화재, 풍화 등으로 인해 사찰의 크기는 1/20 수준으로 축소되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소규모 사원으로 탑파(塔婆) 등은 소실되고 금당건물 세 개만이 남아있다. 이 중 본당에는 아스카 대불(飛鳥大佛)이 봉안되어 있고 국가 중요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
아스카데라는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라는 인물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소가 씨들의 씨사(氏寺)이다. 588년 공사를 시작하여 9년만인 596년 완공되어 호코지로 명명되었다. 그런데 이 소가 씨가 백제출신 도래인(渡來人)이라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호코지의 창건에는 백제의 조력이 주효했다. 백제 위덕왕이 불사리(佛舍利)와 승려 여섯 명, 노반박사(鑪盤博士)로서 장덕(將德) 백매순(白昧淳), 와박사(瓦博士)로서 마나문노(麻奈文奴) · 양귀문(陽貴文) · 석마제미(昔麻帝彌) 등 네 명, 화공(畵工) 한 명 등 사찰 건설에 필요한 기술자를 일본에 파견한 것이다.
이 사원의 건설은 한 씨족의 가업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으로 평가된다. 또 일본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포교되고 사찰이 창건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아스카데라는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 계통의 문물도 적극적으로 수입하는 창구가 되었다. 고구려에 신지식의 서책을 요청하고, 승려 혜자(惠慈) 등을 초빙하기도 하였다. 고구려 승려 혜자와 백제 승려 혜총(慧聰)은 성덕태자[쇼토쿠태자(聖德太子, 厩戸王)]의 스승으로서 아스카시대 개막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아스카데라는 본래 백제식 가람배치인 1탑 1금당의 형태였는데, 고구려 승려가 이곳에 거류하면서 후대의 1탑 3금당 형태로, 가람배치가 고구려식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본당의 본존불(本尊佛)인 아스카 대불이 1400여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대불은 높이가 약 3m에 이르고 구리 15톤, 금 30kg이 사용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 대불은 불상은 구라츠쿠리노도리(鞍作鳥, 鞍作止利) 혹은 사마지리(司馬止利)로도 불리는 인물이 천황의 명령으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이 인물 역시 백제 출신의 장인, 혹은 승려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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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조사/아스카데라 자료번호 : isea.d_0002_0020_003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