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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자안산성

自安山城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2004·2007-2009
  • 시대
    고구려/요금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강동향 자안촌(吉林省 通化市 江東鄕 自安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2,773m
입지
산 정상부에 위치, 동남부는 절벽임. 높이는 약 200m
유적개관
평면형태는 불규칙한 장방형으로, 산정상부에 성이 위치한다. 2004년 시굴조사, 2007년~2009년 발굴조사되었다. 문지는 4곳이 확인되었다. 현재 성벽의 높이는 약 0.8-1m이다. 성 내부에는 주거지, 우물, 배수구 등이 있는데, 그 중 주거지와 1,2호 배수시설 등은 발굴조사되었다.
유물개관
한대 토기편, 고구려 기와편, 고구려 이형 토제품, 금대 동전, 자기편 등
참고문헌
「博物館硏究」1991-3
해설
집안에서 길림까지는 통화에서 북상하여 유하(柳河)·매하구(梅河口) 등 휘발하(輝發河)의 수계에서 합류하고, 그것을 따라 내려가 북으로 흐르는 송화강에 들어가면 다다를 수 있다. 통화시 중심지에서 동북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서 혼강(渾江)이 합니하(哈泥河)와 합류하는 곳에 인접한 북쪽 강동향 자안촌의 동쪽에 있는 산성이다. 성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산으로 이어져 있다. 동쪽은 혼강(渾江), 서남쪽은 합니하가 흐르며, 동남쪽에서 합니하가 혼강으로 합류한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526m로서 이곳에 오르면 주변의 산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1983년 통화시 문화국의 문화지 편집팀에 의해 두 차례 실측조사가 실시되었고, 1985년 통화시 문물조사대가 조사와 실측을 다시 시행하였다. 1988년과 1989년에 각각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와 통화시 문물관리변공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조사하고 실측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고려성자’라고 불렀지만, 다른 성과 구별하기 위해 성이 위치한 곳의 지명을 따서 ‘자안산성’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4년과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에서 시굴 및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산성의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불규칙한 장방형으로 남북 길이 925m, 동서 너비 300~450m이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107m, 서벽 957m, 남벽 347m, 북벽 362m로 전체 둘레 2,773m에 이른다. 성 내부는 동쪽과 남쪽이 높고 서쪽과 북쪽이 낮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동쪽과 남쪽은 가장 자리에 가파른 절벽을 끼고 있어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낮은 성벽만을 쌓았고 서쪽과 북쪽은 상대적으로 높은 성벽을 쌓았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서벽과 남벽은 대부분 무너졌으며 서벽의 북쪽 끝과 북벽의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구간의 성벽은 돌로 쌓은 고구려 산성에서 바깥쪽 돌이 다 떨어져 나가고 안쪽 돌만 남아 있다. 성돌은 대체로 길이 38~42cm, 너비 18~20cm이다. 현재는 서벽을 중심으로 정비 복원되었다. 성벽의 바깥쪽 잔존 높이는 3m, 안쪽은 1~1.5m이며, 상단부의 너비는 3m이다. 서벽의 남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고, 북쪽은 흙만으로 쌓았다. 성문은 5개가 있는데, 1호와 5호는 남벽에, 2호와 3호는 서벽에, 4호 문지는 북벽에 설치되어 있다. 서남쪽의 1호 문지를 정문으로 보는데, 현재 폭이 14m 남아 있고 문 안으로 들어가 성안으로 통하는 길은 석판(石板)으로 깔았고, 석판 아래는 배수구이다. 그 바깥쪽으로 6.5m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흙 언덕이 남아 있다. 남쪽의 언덕이 온전히 남아 있는데 높이 7.5m, 직경 14m 가량으로, 차단벽 혹은 성문 밖의 문궐유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로부터 7m 뒤에 1호 문지가 있다.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돌로 쌓은 성문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기초부만 남아 있다. 1호 문지는 성안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와 연결되기 때문에 주요 배수구로서의 역할도 함께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수로는 정문 앞쪽 100m 지점에서 혼강으로 흘러든다. 성 내에서는 우물 2기와 저수시설, 배수시설 3기가 확인되었다. 1호와 3호 배수로는 성벽에, 2호 배수로는 1호 문지 아래에 설치되었다. 산성의 동북쪽 모서리와 서북쪽 모서리에 각루(角樓) 유적이 남아 있고, 지세가 가장 높은 동벽 바깥에 초소 평대(平臺)가 여러 군데 설치되어 있다. 비교적 넓은 것은 길이 18m, 폭 4m이다. 또 북벽 바깥에도 길이 21.8m, 너비 6.5m인 비교적 넓은 평대가 있다. 성 안 북부와 동남부에서 건물 초석 등이 발견되어 건물지로 추정하고 있다.
지표에 널려진 토기 조각은 대부분 흙으로 빚은 회색 토기와 회갈색 토기이며, 수습된 유물은 질그릇이 대부분인데, 그 가운데 고운 바탕 흙으로 빚은 회색 질그릇이 가장 많았고 적갈색 질그릇이 그 다음으로 많았으며 조개가루를 넣은 적갈색 질그릇도 일부 확인되었다. 질그릇을 구운 소성 온도는 높지 않았고 겉은 단단하였으며 모두 물레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었다. 구별 가능한 기종으로는 단지와 시루가 있다. 무늬는 없는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마름모꼴 그물무늬, 눌러 그은 무늬, 음각 줄무늬와 같은 것이 있었다. 또한 2004년 이후 고구려 중기로 편년되는 종지, 반, 호, 옹, 시루 등의 토기 뿐만 아니라 기와편도 출토되었다.
자안산성을 고구려와 관계없는 한대(漢代) 산성으로 판단하는 견해가 있었지만, 발굴 이후 고구려 중기로 편년되는 토기가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중기 이후에도 산성이 활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나아가 성의 초축연대에 관해서는 성문 앞의 흙덩이나 대규모의 배수시설, 토석혼축 방식의 사다리꼴 성벽 등을 근거로 자안산성을 서한시기 제2현도군 치소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산성에서 발견되는 대규모의 배수시설은 남한의 시루봉보루나 중국의 여러 중대형 고구려 산성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며, 용마산 2보루에서도 석축으로 된 차단벽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구조물을 근거로 한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면, 고구려 중기로 편년되는 토기 및 기와 조각의 발굴에 따라 성의 축조는 환도산성이나 국내성 보다 이르지 않으며 그 활용 시기는 오녀산성 제4기(고구려 중기)나 국내성과 대체로 유사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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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안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