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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공농산성

工農山城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요원시 공농향(吉林省 遼源市 工農鄕)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1,431m
입지
동요하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성자산산성을 조망할 수 있다.
유적개관
평면형태가 타원형이며, 남문, 서문, 북문이 있으며, 옹성이 있다. 성벽의 기초 폭은 8m, 높이는 1-1.5m이다.
유물개관
* 니질회도편, 대상파수
참고문헌
「遼源市文物志」
해설
요원지역은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 압록강 중류 일대에서 휘발하 일대를 거쳐 요하 상류방면으로 나아갈 때 거쳐야 하는 교통로의 요충지이다. 길림합달령산맥(吉林哈達嶺山脈)과 대흑산맥(大黑山脈) 사이에 위치한 분지로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서북방면으로는 동요하(東遼河)가 흐르고, 동북방면은 이통하(伊通河), 동남방면은 휘발하(輝發河), 서남방면은 구하(寇河)와 각각 분수령을 이루면서 여러 지류가 발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은 각 수계를 이어주는 교통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공농산성은 공농향 동북쪽 1.5km지점의 공농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요원시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3.5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산성의 서북부는 동요하(洞遼河)를 사이에 두고 용수산성과 인접하며, 북쪽으로는 성자산산성과 마주본다. 성내 제일 높은 곳은 동북 회절부로 해발 384.25m이며, 산성 북쪽에는 동요하가 서류하고 남쪽으로는 위진하(渭津河)가 서류하다가 서남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서북으로 꺾은 다음 동북쪽에서 동요하와 합류하여 서류한다. 두 강줄기는 마치 산성의 북, 서, 남 3면을 둘러싼 천연해자처럼 보인다. 남은 동쪽은 산줄기로 이어지는 요새지이다.
1958년 이래 요원시 문물관리소에서 여러 차례 조사하였다.
성의 지세는 험준하고 가팔라서 방어하기는 쉽고 진공하기는 어렵다. 성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을 닮았고, 성벽은 흙을 다져 쌓았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1,431m이고 서벽의 길이는 390m, 북벽의 길이는 300m, 남벽은 487m, 동벽은 254m이다. 서벽의 높이는 5m정도이며, 정상부의 폭은 약 2m, 기저부의 폭은 약 8m이다. 동남 양쪽의 벽은 험준한 산줄기를 따라 축조하였는데 잔존 높이는 약 1m이다. 문지는 남벽과 서벽, 북벽 세 곳에 설치되었다. 남문은 남벽 중간에 위치하는데 양측이 비교적 높고 너비는 24m에 이른다. 북벽은 동단과 서단이 높고 중간은 낮은 편인데, 북벽 중간에 너비 3m 정도로 북문이 위치해 있다. 남문과 북문 사이에는 원래 도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도랑이 되었다. 이 도로 중간 지점에 서문으로 통하는 소로가 있다. 서벽 중앙에는 너비 6m의 문지가 있다. 성벽 곳곳에서 치성으로 보이는 평대(平臺)가 확인된다. 성내에서는 선사시대의 유물을 비롯하여 다수의 토기편과 항아리편, 돌절구 등이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 요금시대 토기의 특징을 보이는 토기편도 다수이다.
따라서 이 성은 고구려에 의해 축조되어 발해와 요, 금대까지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농산성은 성자산산성과 함께 요원지역의 치소성인 용수산성을 방어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용수산성의 동남쪽에 위치하므로, 동남방면의 교통로를 봉쇄하는 전초기지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서북쪽의 동요하·위진하를 천연해자로 삼아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수산성의 배후산성으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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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농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4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