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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해원조(海原造; 우나하라노미야츠코)

해원조(海原造; 우나하라노미야츠코)
 신라국(新羅國) 사람 진광사김가지모례(進廣肆金加志毛禮)의 후손이다.
 
【주석】
1. 해원조(海原造)
『속일본기』 연력(延曆) 2년(783) 7월 계사조에는 “우경인 정6위상 김오백의해원조(金五百依海原造)”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해원조의 성을 언제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인물이 유일하다. 또한 동기사에 우경인 산위 종6위상 김사순(金肆順)에게 해원련(海原連)의 성을 주었다고 한다. 해원조와 해원련은 씨성이 차이가 있지만, 지명으로 생각되는 ‘해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동족일 가능성이 있다. 해원조는 김가지모례(金加志毛禮)라는 인명으로부터 그의 선조가 원래 김씨(金氏) 성임을 알 수 있다.
2. 진광사김가지모례(進廣肆金加志毛禮)
이 인명은 기타의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진광사의 관위는 천무(天武) 14년(685)에 개편된 48관위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하급 관위이다. 모례(毛禮)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15년(528)조에 고구려 승려인 묵호자가 모례(毛禮)의 집에서 묵었다는 전승이 전하고 있다. 『일본서기』 지통(持統) 7년(693) 2월조의 “표류해 온 신라인 모자모례(牟自毛禮) 등 37인을 억덕(憶德) 등의 귀국길에 보냈다”라는 기록에도 모례가 보인다. 신라적인 이름의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김가지모례가 언제 일본에 이주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무조에서 그리 멀지않은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씨(金氏) 성의 도래계 인물에 대해서는, 『속일본기』 화동(和銅) 원년(708) 정월 을사조에 원명천황(元明天皇)의 즉위식에 즈음하여 관위 수여가 행해졌는데 이때 무위(無位) 김상원(金上元)에게 종5위하를 내렸고, 동 2년 11월조에는 종5위하 김상원을 지방 장관인 백기수(伯耆守)의 직에 보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파격적인 대우였다. 또 『정창원문서』 의 천평승보(天平勝寶) 6년(754) 8월 8일부 「백부법화충본장(百部法華充本帳)」(『大日本古文書』 4-17, 18)에 김을충(金乙虫), 김법효(金法孝), 동 「백부법화경충지장(百部法華經充紙帳)」(동 4-26)에 김월족(金月足) 등이 나온다. 이들은 사경 업무 종사자로서 사경소 업무일지에 기록되어 있다. 김가지모례와는 동족으로 생각되나 계보관계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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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조(海原造; 우나하라노미야츠코)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40_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