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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정촌숙녜(淨村宿禰; 기요무라노스쿠네)

정촌숙녜(淨村宿禰; 기요무라노스쿠네)
 진(陳)의 원도도(袁濤塗)로부터 나왔다.
 
【주석】
1. 정촌숙녜(淨村宿禰)
정촌(淨村)은 청촌(淸村)이라고도 쓴다. 『속일본기』 보귀(寶龜) 9년(778) 12월조에 현번두(玄蕃頭) 종5위상 원진경(袁晉卿)이 청촌숙녜(淸村宿禰)의 씨성을 받고 있어, 이전 성은 원(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직무인 현번두는 율령제에서 치부성에 소속된 현방료의 장관이다. 승니의 명적과 궁중의 불사법회를 관리하고 외국 사절을 접대하는 등의 업무에 종사하였다. 『속일본기』 천평신호(天平神護) 2년(768) 10월에 불사리를 공양하는 법회에서 당악을 연주하였고, 신호경운(神護景雲) 원년(767) 2월에는 대학의 공자 제례식에서 음박사(音博士) 원진경이 참여하여 종5위상으로 1등급 승진하였다. 동 신호경운 3년(769) 8월조에는 종5위상 원진경을 일향수(日向守)에 보임하였다. 앞서 인용한 보귀 9년(778) 2월조에는 원진경의 도래 사정에 대하여 천평(天平) 7년(735)에 일본에서 파견한 견당대사 다치비진인광성(多治比眞人廣成) 일행이 귀국할 때 따라왔으며 그때의 나이가 18~19세였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 온 후 문선(文選), 이아(爾雅, 중국 최고의 類語, 語釋 사전)를 배워 대학의 음박사가 되고 이후 대학두(大學頭), 안방수(安房守)를 역임했다고 한다. 그가 어떤 사유로 견당사를 따라 일본에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 고전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있었다고 보이며, 일본 조정이 그의 재능을 키워 활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진원도도(陳袁濤塗)
진은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조 최후의 국으로, 수문제에 의해 589년에 멸망하였다. 원진경을 진의 원도도(袁濤塗) 후손이라 한 것은 실제의 계보일 가능성이 있다. 남북조 시대의 말기에 존재한 국이지만, 원 조상의 출자의식을 가문을 통해 전승으로 기억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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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촌숙녜(淨村宿禰; 기요무라노스쿠네)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10_0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