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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지방구관애

紙房溝關隘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1960·1980
  • 시대
    고구려
  • 원소장처
    길림성 반석현 보산향 과회촌(吉林省 磐石縣 寶山鄕 鍋盔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200m
입지
반석현 보산향 과회촌 서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지방구파의 산에 위치해 있다. 과회산의 여러 봉우리가 기복이 심하여 천연의 장벽을 이루고 있다. 관애는 소과회산의 주봉우리에서 서남과 동남으로 향해 이어진 두 능선 사이의 협곡에 축조되었다.
유적개관
관애는 소과회산의 주봉우리에서 서남과 동남으로 향해 이어진 두 능선 사이의 협곡에 축조되어 있다. 차단벽은 토석혼축 성벽으로 길이가 200m가량인데, 성벽의 기저부 폭은 12m, 정상부 너비는 1m, 높이는 2~3m로 일정하지 않다. 성벽의 안쪽에는 모두 흙을 파낸 후에 생긴 도랑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차단벽의 서남쪽에는 2m 너비의 절개부가 있는데, 성 내에서 발원한 샘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물개관
시루, 청동완
참고문헌
「磐石縣文物志」
해설
과회촌에서 서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지방구파(紙房溝垻)의 소과회산(小鍋盔山) 정상부에 있는 산성이다. 남쪽은 과수원과 접하여 1km 지점에 과수원집이 있고, 다시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는 보산향에서 과회촌으로 통하는 지방도로가 있다. 과회촌의 여러 봉우리가 기복이 심하여 천연의 장벽을 이루었다. 산성은 소과회산의 주봉에서 서남과 동남으로 향해 이어진 두 능선 사이의 협곡에 축조되었다. 성벽은 가로로 계곡 입구를 막고 양쪽 산비탈에서 산등성이까지 이어졌으며, 산등성이에 의지하여 천연의 장벽을 이루었다. 이러한 형식을 패성(壩城) 혹은 관애(關隘)라고도 부르는데, 패(壩)는 제방의 의미로 곡부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둘레는 5km에 가깝고, 산성의 지세는 험요하여 지키기는 쉽고 공격은 어려우며 매우 웅장하다. 성벽의 길이는 약 200m이고, 기저부 너비는 12m, 상단부 너비는 1m, 잔존 높이는 2~3m로 일정하지 않다. 성벽의 양쪽에는 모두 흙을 파낸 후에 생긴 도랑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며, 성체는 산의 사석토(砂石土)를 이용하여 쌓았다. 서남쪽에는 2m 너비의 절개부가 있는데, 성안에서 발원한 샘물이 연중 얼지 않는 작은 시내를 이루어 이곳을 통해 흘러나가는 배수구가 되고 있다. 이 절개부를 성문지로 추정하기도 한다. 성내에는 크고 작은 평대(平臺)가 수십 곳 있는데, 가장 작은 것의 면적은 25㎡이고, 가장 큰 것의 면적은 3,000㎡에 달한다. 현지 주민들은 이것을 ‘점장대(点將臺)’라고 부른다. 1960년의 조사보고에서는 “과거에 기와편과 동제 밥그릇 등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1980년대 조사에서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성의 형식은 고구려 산성의 축조기법과 기본적으로 같아서 고구려의 중요한 산성 중 하나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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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구관애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1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