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백성이 방비를 갖추고 있었으니, 두숭의 아룀이 잘 쓰였고,
[만]백성주 001이 방비를 갖추고 있었으니, 두숭의 아룀이 잘 쓰였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랑장주 002 두숭과 도요장군주 003 주휘 등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남선우 안국은 고호주 004와 소원합니다주 005. [한편] 우부에서 항복한 자들은 함께 안국을 위협하고 병사를 일으켜 [한을] 배반할 것을 꾀하니 이를 경계하여 방비하기를 청하옵니다.’ 황제가 이를 따랐다. 이때 [두]숭과 [주]휘가 마침내 군사를 징발하여 그 [선우]정주 006으로 나아갔다. 안국은 밤에 한의 군대가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장막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리고] 인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보복하여 좌현왕주 007 사자주 008를 죽이려 하였다. [그런데] 사자가 알아채 여막[의 사람들]을 모두 거느리고 만백성으로 들어갔다. 안국이 추격하여 성 아래에 이르렀으나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었다. 두숭 등이 사람을 보내어 타이르고 깨우쳐 그들을 화해시키려 하였으나 안국은 듣지 않았다. [안국은] 성이 여전히 함락되지 않자 군사를 이끌고 오원[군]에 주둔하였다. [두]숭과 [주]휘가 이에 여러 군주 009의 기병을 징발하여 추격을 급박하게 하니 안국의 장인인 골도후 희위 등이 함께 피살될 것을 염려하여 안국을 때려 죽였다.”
• 참고
『後漢書』 卷89 南匈奴 六年春 皇甫棱免 以執金吾朱徽行度遼將軍 時單于與中郞將杜崇不相平 迺上書告崇崇諷西河太守令斷單于章 無由自聞 而崇因與朱徽上言 南單于安國疏遠故胡 親近新降 欲殺左賢王師子及左臺且渠劉利等 又右部降者謀共迫脅安國 起兵背畔 請西河 上郡 安定爲之儆備 和帝下公卿議 皆以爲 蠻夷反覆 雖難測知 然大兵聚會 必未敢動搖 今宜遣有方略使者之單于庭 與杜崇朱徽及西河太守幷力 觀其動靜 如無它變 可令崇等就安國會其左右大臣 責其部衆橫暴爲邊害者 共平罪誅 若不從命 令爲權時方略 事畢之後裁行客賜 亦足以威示百蠻 帝從之 於是徽崇遂發兵造其庭 安國夜聞漢軍至 大驚 棄帳而去 因擧兵及將新降者欲誅師子 師子先知 乃悉將廬落入曼柏城 安國追到城下 門閉不得入 朱徽遣吏曉譬和之 安國不聽 城旣不下 乃引兵屯五原 崇徽因發諸郡騎追赴之急 衆皆大恐 安國舅骨都侯喜爲等慮幷被誅 乃格殺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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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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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08)
- 각주 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