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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활을 당기어 독을 쏘았고, 큰 골짜기를 둘러서 안녕을 도모하였으며, 바람을 막고자 기름을 발랐고, 깊은 굴에 혈거하면서 스스로 편안히 했다.

활을 당기어 독을 쏘았고, 큰 골짜기를 둘러서 안녕을 도모하였으며, 바람주 001
각주 001)
「吹」를 「冷」으로 교감하여, ‘추위’로 해석하기도 한다(김육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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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막고자 기름을 발랐고, 깊은 굴에 혈거하면서 스스로 편안히 했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천여 리에 있으며, 큰 바다에 잇닿아 있다. 종족의 무리는, 비록 수가 적으나 용력있는 자가 많다. 산이 험한 곳에 산다. 또한 활을 잘 쏘는데, 쏘면 사람의 눈에 맞출 수 있다. 활의 길이는 4척으로, 위력이 쇠뇌와 같고, 화살은 초(楛)를 사용하는데, 길이가 1척 8촌이다. 청석(靑石)으로 촉을 만들고, 촉에는 모두 독을 발라, 사람을 맞히면 바로 죽는다. 배를 잘 타고, 노략질을 좋아해서, 이웃 나라가 두려워하고 근심하지만, 끝내 복속시킬 수 없었다. 동이의 음식에는, 모두 조두를 사용하는데, 오직 읍루만 홀로 [조두가] 없으니, 법속은 [동이 중] 가장 기강이 없다. 사람의 외형은 부여와 비슷하지만, 언어는 서로 다르다. 오곡과 마포가 있고, 붉은 옥과 좋은 담비가 산출된다. 군장주 002
각주 002)
『三國志』에는 ‘대군장’이 없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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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고, 그 읍락마다 각각 대인이 있다. 산림에 사는데, 땅의 기운이 매우 차다. 성곽이 없고주 003
각주 003)
‘無城郭’은 『後漢書』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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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림에 의지하여 혈거한다. 돼지를 잘 기르며,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입는다. 겨울철에는, [돼지] 기름을 몸에 바름으로써,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여름철이면 벌거벗고, 작은 포로 그 앞뒤를 가린다. 움집은 깊을수록 귀하게 여기는데, 대가는 아홉 단[의 사다리를 타고서야] 이를 수 있다.”
 
• 참고
『三國志』 卷30 挹婁 挹婁在夫餘東千餘里 濱大海 南與北沃沮接 未知其北所極 其土地多山險 其人形似夫餘言語不與夫餘句麗同 有五穀牛馬麻布 人多勇力 無大君長 邑落各有大人 處山林之間 常穴居 大家深九梯 以多爲好 土氣寒 劇於夫餘 其俗好養豬 食其肉 衣其皮 冬以豬膏塗身 厚數分 以禦風寒 夏則裸袒 以尺布隱其前後 以蔽形體 其人不絜 作溷在中央 人圍其表居 其弓長四尺 力如弩 矢用楛 長尺八寸 靑石爲鏃 古之肅愼氏之國也 善射 射人皆入因 矢施毒 人中皆死 出赤玉好貂 今所謂挹婁貂是也 自漢已來 臣屬夫餘 夫餘責其租賦重 以黃初中叛之 夫餘數伐之 其人衆雖少 所在山險 鄰國人畏其弓矢 卒不能服也 其國便乘船寇盜 鄰國患之 東夷飮食類皆用俎豆 唯挹婁不法俗 最無綱紀也
『後漢書』 卷85 挹婁 挹婁古肅愼之國也 在夫餘東北千餘里 東濱大海 南與北沃沮接 不知其北所極 土地多山險 人形似夫餘 而言語各異 有五穀麻布 出赤玉好貂 無君長 其邑落各有大人 處於山林之間 土氣極寒 常爲穴居 以深爲貴 大家至接九梯 好養豕 食其肉衣其皮 冬以豕膏塗身 厚數分 以禦風寒 夏則裸袒 以尺布蔽其前後其人臭穢不絜 作廁於中 圜之而居 自漢興已後 臣屬夫餘 種衆雖少而多勇力 處山險 又善射 發能入人目 弓長四尺 力如弩 矢用楛 長一尺八寸 靑石爲鏃 鏃皆施毒 中人卽死 便乘船 好寇盜 鄰國畏患 而卒不能服 東夷夫餘飮食類 皆用俎豆 唯挹婁獨無 法俗最無綱紀者也

  • 각주 001)
    「吹」를 「冷」으로 교감하여, ‘추위’로 해석하기도 한다(김육불). 바로가기
  • 각주 002)
    『三國志』에는 ‘대군장’이 없다고 전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無城郭’은 『後漢書』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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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당기어 독을 쏘았고, 큰 골짜기를 둘러서 안녕을 도모하였으며, 바람을 막고자 기름을 발랐고, 깊은 굴에 혈거하면서 스스로 편안히 했다. 자료번호 : hw.k_0002_0090_0010